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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17. 2019

타인의 목숨과 맞바꾼 연봉

현대자동차를 통해 바라보는 위험의 외주화


EP1. 어떤 임원

나는 3년간 현대자동차의 인사 조직에서 근무했다. 신입사원 시절, 인사나 교육을 담당하는 신입사원들을 모아놓고 부문의 최고참 임원과 회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임원은 본인이 1998년 IMF 당시 현대자동차 직원 몇천명을 구조조정 한 당신의 ‘업적’을 일장연설했다. 실업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외환 위기의 한국 사회에서, 구조조정이란 사회적 살인과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그 임원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현대자동차가 시행한 구조조정은 최초의 대규모 경영상 해고였고, '국가부도의 날'의 서막을 알리는 사회적 사건이었다. 임원이 신입사원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 정도 결단력이 있어야 임원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너희도 이 자리에 올라야 타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된다? 나는 내 순서의 건배사만 생각하며 얼굴이 구겨지지 않도록 애를 썼던 것 같다.


EP2. 어떤 견학

신입사원 교육을 2년간 담당했던 나는 그들과 함께 항상 공장 견학을 갔다. 하지만 어느 공장을 갈지는 매번 고민이었다. 울산공장에 가면 “거기 작업환경 안좋아. 입사하자마자 노조에 물들일 있어?”,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에 가면 “왜 현대차도 아니고 기아차 생산공장을 가?” 결국 여러가지 이유로 자주 가던 공장은 동희오토다. 동희오토 생산 공장의 환경은 “견학하기에 적절”했으며, 수도권에서 방문하기도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항상 동희오토에 갈 때마다 심경이 복잡해졌다. 동희오토는 전원 하청 인원으로 꾸려진, 100%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생산 공장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 기아차와 동희오토 정규직 직원은 없다. 나는 신입사원을 데리고 항상 그 곳으로 견학을 갔다. 비정규직의 작업 모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EP3. 어떤 노래

현대자동차 양재 본사로 출근하는 직원들은 매일 장송곡을 듣는다. 장송곡의 주인공은 유성기업의 노동자였으나 20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씨를 위한 곡이다. 2011년 5월 18일, 주간 2교대제와 심야노동 철폐를 왜치는 엔진 부품 제조업체 유성기업의 노조는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원이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는 직장을 즉각 폐쇄하고 공장을 점거해 노조원을 끌어냈다. 유성기업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에 ‘노조파괴’를 의뢰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현대자동차는 이 '노조 파괴' 컨설팅에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7년 법원은 유성기업의 유시영 회장에게 1년 2개월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고, 근로복지공단은 한씨의 죽음을 산업재해 사망으로 인정했다. 노조 활동과 업무로 인한 우울증이자 자살임을 인정한 것이다. 유성기업은 2014-15년 2년 연속 산업재해율 1위를 기록한 곳이기도 하다. 양재에서 장송곡은 계속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 관계는 한국 노사관계가 안고 있는 '모순의 집적지'이자 바로미터다. 뉴스는 매년 연봉 9000만원을 받는 생산직들이 이번에도 파업에 들어갔다는 속보를 보도한다. 이른바 ‘귀족 노조’다. 현대자동차의 사용자 역시 노조를 경영의 동반자이기 보다는 생산에 필요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인다. 박태주 박사는 책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에서 현대차 노사관계는 한국 노사관계의 각종 문제가 고스란히 원형(原型)을 간직하고 있는, 노동운동 생태계의 보고라고 말한다. 현대차 노사관계가 바뀌면 한국의 노사관계도 바뀐다.


박태주 박사는 현대차 노사관계의 본질은 담합이라고 말한다. 파업 과정에서 높은 임금과 연대의 포기를 교환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갈등적 담합’의 시초는 임원이 자랑스럽게 말했던 1998년 구조조정 당시로 거슬러 간다. 대규모 인원이 사라진 이후,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공포로 하루 하루를 살아기는 노동자들에게는 "있을 때 벌자"라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또 다른 악영향은 고용의 안전판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용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외환위기 이후, 현대자동차에는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를 희생시키더라도 정규직의 연봉만 보장하면 되는 실리주의적 노사관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운명공동체라는 인식보단, 각자의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현대자동차의 노사관계는 비정규직 소외를 바탕으로 점점 커졌다. 그들의 노사관계 시스템 속에는 유성기업과 동희오토 등 사내하청(비정규직) 직원들의 희생이 옴붙어있다.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며 컨베이어이 끼어 숨진 김용균씨, 산업재해율 1위의 기업에서 결국 자살한 유성기업의 한광호씨는 모두 98년 이후 더 강화된, 신자유주의 사회가 낳은 희생자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중간 착취의 희생자들이다.


얼마전 한국일보의 칼럼 "중간 착취라는 직업"에서 인상깊은 사진을 봤다. 방사선 관리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 증명서였다. 20년간 같은 일을 하는 상시직인데, 소속 용역업체가 바뀌느라 소속 기업만 10번이 바뀌었다. 용역업체는 인건비에서 약 30%를 떼가며, 원청인 한수원이 어느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는가에 따라 소속은 바뀐다. 원청업체는 언제든 인원을 줄이거나 교체할 수 있어서 좋고, 용역 업체는 수수료를 받으니 좋다. 문제는 그 가운데 착취당하는 중간 계층, 파견 용역자들이다. 이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도 산재 신청할 소속이 없다.




그럼 다시 궁금함이 든다. 외환 위기에 있어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비슷한 외환위기를 겪은 독일의 폭스바겐은 단순 해고가 아닌,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제도와 근로시간 계좌제 등 노사가 함께 상생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해외 생산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던 독일 내 높은 실업율 문제를 나누기 위해 노사와 협력했다. 물론 독일의 이런 협력적 노사관계는 높은 수준으로 제도화된 노동법, 산별노조가 주도하는 단체교섭, 개별기업의 노사의 공동결정권 제도 등 합리적인 제도적 기반이 있었다. *


현대자동차처럼 고임금 저생산을 기조로 하는 현재의 갈등적 노사관계는 노사 모두가 실패하는 지름길이다.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와 노사관계 모델을 '광주형 일자리'에서 찾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높은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대신, 국가와 지자체가 복지를 지원해 실질임금을 높이는 일자리 창출을 말한다. 현대자동차가 광주에 경형 SUV 생산공장을 만드는 것이 국내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광주형 일자리는 독일 폭스바겐식 노사관계, "아우토5000"를 본딴 것이다. 실업자 5000명을 고용할테니, 1인당 월급은 정규직 월급보다 20프로 낮은 5000마르크를 주겠다는 것. 독일 역시 처음엔 노조의 반발이 있었으나 합의를 거친 끝에 폭스바겐은 독립 자회사인 "아우토 5000"을 건설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지역의 문제가 아닌, 앞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모델로서 실험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일자리와 노사관계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노사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임금인상이나 고용보장이 아닌 장기적 생산성을 고려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에서 비정규직과 하청 용역을 도태시키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나는 광주형 일자리가 새로운 노사관계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용균법, 즉 더 이상의 위험의 외주화를 없애기 위한 산업안정보건법 개정안 역시 비정규직과 사내하청을 볼모로 삼는 현재의 토대 위에서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누군가 죽어야만 세상이 바뀌는 것은 이제 지겹지 않은가.






나는 나의 첫 직장인 현대자동차를 떠올리면 다양한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구조조정을 자랑스럽게 말하던 부사장의 목소리, 출근길에 들리던 우울한 레퀴엠, 여긴 작업현장이 좋은 곳이라며 동희오토 견학을 이끌던 나의 목소리…. 하지만 계속 내 귀에 남아있던 말들은 본사 앞 농성을 귀찮게 여기고 욕하는 동료들의 목소리였다. 만약 당신이 기득권이라고 생각한다면, 마땅한 자세를 보여주기를. 만약 당신이 노동자라고 생각한다면, 연대하기를. 하지만 우리는 왜 노동자들을 귀찮은 존재로 바라보는가. 장송곡이 시끄럽다며 작작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가. 왜 생존하기 위한 그들의 진혼곡을 이명처럼 취급하는가.




* 논문) "자동차산업의 노사관계 비교연구 : 폭스바겐과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문윤영(2016),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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