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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04. 2019

아홉수가 어딨어

우리에겐 천지운행의 변명거리가 필요하다

"사람마다 아홉수가 사납지"


아홉수란 9, 19, 29와 같이 아홉이 든 수를 뜻한다. 동양에서는 아홉수를 불길하다고 여겨 이 나이에는 결혼이나 이사와 같인 대소사를 꺼렸다. 하지만 이 아홉수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주역에서 9는 양을 상징하는 길한 숫자다. 우리의 의식에도 9는 최고, 완결의 숫자이며(바둑 9단, 정치9단), 수를 인류 문명을 지배한 상징적 기호로 본 엔드레스와 시멜의 <수의 신비와 마법>에는 중국과 몽고에서는 9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고 한다.


아홉수는 9라는 미완결된 숫자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10이니, 그 때까지 별일 없도록 행동 거지를 조심하라는 조언과 걱정이 담긴 미신, 새로운 변화를 목전에 앞둔 폭풍전야의 심리적 강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홉수는 십진법을 국제 규범으로 가진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강박이다. 평행우주 어딘가 2진수의 세계에서는 아홉수 강박을 매년 느끼고 사는 종족이 있을 수도 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살을 먹으며 삶을 시작하는 한국인들은 이 아홉수의 공격을 다른 나라보다 1년이나 일찍 받는다.


사람마다 아홉수가 사납지
박경리, <토지>


아홉수라서 사나운게 아니라 그 시즌에 사나울 일들이 보통 발생할 확률이 높다. 이십대 후반의 결혼, 독립, 이사, 이직 등.. 회사 생활의 짬으로 이 시즌에 투자나 사업을 시작한 사람도 유독 많다. “직장인 29%, 아홉수 때 안 좋은 일 겪어… 믿진 않지만 꺼림칙해” 이 기사에 따르면 71퍼센트는 안좋은 일을 겪지 않았다. 겪은 29%는 물론 아홉수를 믿은 사람들이다.  


돼! 돼!




우리에겐 천지운행의 변명거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홉수가 없는가? 아홉수는 있다. 우리에겐 그런 징크스가 필요하다. 25살에겐 반오십이라는 변명이, 29살에겐 아홉수라는 변명이, 서른에겐 그냥 서른이라는 변명이. 내가 벌써 이나이가 되었는데 한 게 없다는 자조와, 이 나이는 원래 다 그렇다는 자기합리화의 콜라보레이션은 실제로 나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심리적 전략이다. 우리는 나의 실수와 불운으로부터 도피할 천지운행의 변명 거리가 필요하다. 이 중 최고봉인 삼재는 종류도 다양(입삼재띠, 눌삼재띠, 날삼재띠)해서 거의 모든 인구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삶이 고단할 수록, 유독 올해 다사다난한 사람일수록 아홉수를 탓하고 싶어질 수 있다. 하필 회사에서 짤린다거나, 파혼을 한다거나…. 그럴 땐 야구에서는 수비수보다 투수가 징크스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성공 확률이 낮은 포지션일 수록 더 많은 미신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불확실하고 걱정하는게 많다는 건 앞으로 더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는 힌트다. 경계에 서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만 설레는 일이다. 나처럼 밍숭맹숭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은 딱히 아홉수가 올 건덕지가 없다.


요즘 태어나는 신생아의 기대 수명은 약 150살이라던데, 그들에게 아홉수는 15번이나 오는 것일까?


만약 그래도 아홉수의 존재를 믿는다면, 아직 나의 아홉수는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자. 한 해의 시작을 3월 21일이라고 생각해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야말로 새해의 첫날로 삼은 문명이 많았다. 아니면 외국인의 마음으로 살자. 우리는 인터내셔널 에이지로 27살이다. 아니면 1000년 묵은 구렁이의 마음으로 살자. 우주 나이로 치면 우리는 모두 동갑이다. 아니면 나같이 굉장히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방법도 있다. 아홉수는 무탈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한 시즌의 9회말, 이십대의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삼십대를 위한 초석이라고 의미 부여를 하자. 나는 나의 원대하고 새로운 시대를 기다리며 지난한 아홉수를 가뿐하게 보내겠다. 대 사과집 ERA를 손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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