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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22. 2019

페미니스트가 꿈꾸는 임신∙출산∙육아

완벽한 네 가지 시나리오


내가 비혼주의자인 이유

한 톨도 손해보고 싶지 않다



요즘 친구들에게 종종 얘기한다. 나 애 낳으면, 너무 잘 키울 것 같아. 갑자기 그런 근거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 거친 세상에서 똑똑하진 않아도 바른 아이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 엄마가 아니라 친구같이 함께 자랄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 새로운 세상에 알을 깨고 나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어른으로서의 자신감.


하지만 나는 비혼주의자, 비출산주의자다.


나에게는 이만한 공포 영화가 없다. 제목 자체가 반어법인 영화 <해피 이벤트>


비혼주의자인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 톨도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다. 주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손해보고 사는 이 시대의 엄마들을 너무나 많이 봐서 그런 걸수도 있다. 나는 내 커리어가 너무 중요하고, 사랑하는 아기도 내 앞길을 막을 수 없다.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 어떡해! 남보다 고기 한 점만 덜먹어도 신경쓰이는데, 만약 승진이 누락되거나 육아를 남편보다 더 해야만하는걸 상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손해보지 않는, 수지맞는 그림은 무엇일까.


어떤 페미니스트가 꿈꾸는 완벽한 임신/출산/육아, 일명 임출육 시나리오를 적어봤다.





태초에 산파가 있었다

1. 죄책감 없는, 자연스러운 임신과 출산


이 글을 쓴 계기가 되어준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호르몬의 거짓말>을 읽으며 나는 적잖히 충격을 받았다. 챕터 마다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 임신 중 금기사항의 대부분이 뒷받침만할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에 놀랐다. 이를테면, 임신한 여성은 기생충에 대한 식중독의 우려가 있으니 초밥을 먹지 말라는 금기사항이 있다. 초밥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써 이 타부는 임신을 기피하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임신 중 초밥의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초밥에 쓰는 생선은 급속 냉동을 했으므로 얼마 없는 소량의 기생충도 모두 죽는다고. 초밥을 먹어서 식중독에 걸릴 위험은 200만명 중 한명 꼴인데 닭고기를 먹고 걸릴 위험은 2만 5천명중 하나 꼴이다.


임신 기간엔 당연히 모든 것에 신중함을 가하면 좋다. 하지만 수많은 ‘임산부 터부’에 자리잡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이러한 지속적인 검열과 걱정이 좋은 엄마가 당연히 가져야할 도덕적 책무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관점의 기반에는 엄마가 임신 기간을 제대로 관리하기만 한다면 태아의 건강과 순산을 완전히 보장할 수 있으며, 만약 태아가 잘못된 경우엔 엄마의 뭔가 잘못을 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는게 낫지." 맞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 산모들은 매일같이 걱정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임산부에게 초밥을 허하라



언제부턴가 임신 기간은 여성의 모든 행동을 속박하는 열달 간의 위험천만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임신이 정상적인 몸의 변화에서 각별한 치료를 요하는 '질병'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산부인과와 의사가 출현한 1900년대부터다. 그 전까지 임산부의 건강을 책임진 것은 주변 공동체의 다른 여성들과 산파였다.


과거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 산파들로부터 대대로 전수받은 지식과 약초, 민간요법을 배우고, 개방적 관계망 속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식을 공유했다. 당시 산파들은 임신은 자연스러운 몸의 과정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개입은 최소화하는 접근 방식을 고수했다. 하지만 산부인과와 남성 의사가 임신의 주도권을 잡게된 후, 임신은 열달 내내 초음파 사진을 찍고 전문가의 각별한 조언의 필요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임신과 출산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는 21세기 산파모델이다. 공인 조산사와 간호 조산사는 모든 여성의 임신 기간은 모든 것을 극도로 조심해야하는 기간이 아니라, 모든 여성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치료가 아닌 돌봄을 시작한다. 로빈 스카인의 델루카의 말처럼 임신 기간을 위험천만한 시기이며 완벽한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늘 경계를 늦춰선 안된다고 모두가 가정해버리면 끊임없는 걱정만이 되풀이된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은 오히려 산모의 스트레스와 병을 유발할 수 있다. 나는 임신하는 여성들이 임신 기간을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로 받아들이고, 큰 걱정없이 보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나 때문에 아기가 잘못될 수 있다는 죄책감 없이 보냈으면 좋겠다.



레즈비언과 라떼파파가 주는 교훈

2. 완전히 평등한 육아


출산 이후에는 삶의 우주가 뒤바뀐다. 그리고 새로운 일이 몰려드는 이 격변의 시기를 우울하게 보내는 산모들이 많다. 산후우울증은 호르몬이 아니라 결혼생활의 질, 주변에 지원해줄 사람들의 여부, 양육 적합성 등 다양한 문화/사회적 요인에서 온다. 무엇보다 양육은 여성에게 특화된 것이고, 모성이란 신성한 것이며, 엄마라면 기꺼이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은 산후 우울증을 유발하는 큰 원인 중 하나다. 조금이라도 그렇지 못한 엄마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아기의 탄생은 1950년대식 감성을 작동시키는 듯 하다. 커플들 다수가 출산 전에는 굉장히 평등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다가도 출산 후에는 전통적인 성 역할로 빠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많은 여성이 이런 말을 듣는다.

“자기가 집에 있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굳이 계속 쓸 필요가 있을까?”

로빈 스타인 델루카,  <호르몬의 거짓말>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이지만 레즈비어니즘의 성애가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즈비언 커플을 치료한 심리학자들이 지켜본 바에 따르면 이들은 ‘이성애자 커플보다 더 평등한 관계로 지내고 있어서 권력, 의사결정권, 가사 책임등을 공유’한다. 이성애 관계만큼 전통적 성 역할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고추 달린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고추 달린 쪽이 쓰레기를 내다 놓고, 엔진 오일을 갈고, 잔디 깎기로 하자고 정할수는 없다.” 그들은 육아와 가사 노동 역시 협동적이고 평등하게 배분하고 실행한다.


어쩌면 사랑하는 애매한 남자와 사는 것보다, 느슨한 연대로 비혼모와 동료로 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양육을 위해 성적 지향을 바꾸라는 얘기가 아니다. 레즈비언의 양육 모델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있다. 양육은 특정 성역할(여성)에게 특화된 것이 아니며, 누구든(남성) 동일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노르웨이는 1993년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도입하여,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이 아빠여야면 수당의 상당 부분을 지급하는 법을 정했다.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가정이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게 만듦으로써, 남성이 일하고 여자가 양육한다는 고정관념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OECD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아내가 3시간 반 일하면 남편도 하루에 3시간 가사노동을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통계를 거론해야 한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대한민국은 여성이 3시간 14분 일할때, 남성은 단 40분만 가사 노동에 참여한다.


라떼파파는 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하는 말로 남녀 공동 육아 문화가 자리잡은 스웨덴에서 유래하였다.


육아는 남녀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노르웨이가 알려주는 것은 초보 부모일 때부터 육아에 참여할 기회와 선택권이 보장된다면 남녀 모두 육아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노르웨이의 아버지들 90%가 육아휴직을 쓴다.

 

“그래도 우리 둘은 육아에서 제몫을 하는 파트너가 있어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아들 녀석이 크루아상을 내 왼쪽 귀에 집어넣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죠. 그래도 그런 걸 운이 좋다고 여기는 세대는 우리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네요.”
타냐가 특유의 차분하고 사색적인 표정으로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애너벨 크랩, <아내가뭄>




전통적 성역할을 깨부시는 유치원

3. 성중립 유치원


완벽한 공동의 육아를 통해 아이를 잘 길러내도 답이 안나오는 건 다음 단계다. 바로 내 새끼의 사회화를 담당할 유치원에 대한 불신이다. (벌써 내 새끼라고 부르는 걸 보니 난 정말 아이를 가지면 안될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낳은 자식이 톰보이거나, 동성애자거나, 트랜스젠더라면 어떨까? 어릴 때부터 본인 지정 성별의 고정관념을 수행하지 않고, 분홍 드레스를 입는 남자 아이로 자라나 주위로부터 눈총을 받는다면? 이 아이가 가진 마이너리티를 담아줄 곳이 세상에 있을까? 필연적으로 차별과 고통을 거치며 자랄 아이에게 이 세상은 얼마나 거칠고 험한 곳일까?


분홍 드레스가 여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줄 선생님, 여자 아이도 조신할 필요 없이 소리치고 뛰어놀 수 있는 걸 알려줄 유치원, 성별의 '차이'보단 '공통점'에 집중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으며, 고정된 성역할을 흡수하지 않을 곳. 세상의 젠더는 남과 여로 이분화되지 않고, 아주 다양하며, 심지어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려줄 학교. 내가 아무리 집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쳐도 집 밖에서 고정적인 성역할을 배워와 “어여쁜 엄마 상어, 힘이 센 아빠 상어” 노래를 부르거나, 가부장제 가족을 답습한 소꿉놀이로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지 않을 그런 유치원이 있을까.


언제까지 여성 캐릭터를 구분하기 위해 속눈썹과 립스틱을 그릴텐가


스웨덴엔 그런 유치원이 있다. 바로 성중립(gender-neutral) 유치원이다. 1996년 기자 출신 성평등 전문가 잉그마르 젠스는 처음 ‘성중립(gender-neutral) 교육’을 시도했고, 스웨덴 정부는 1998년 모든 교육과정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양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했다. 성중립 유치원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을 남학생이나 여학생으로 부르는 대신 ‘친구들’이나 이름을 부르고, 성별에 따라 자동차나 인형 놀이를 구분짓지 않는다. 또 여자아이들에겐 “싫어!”라고 소리치는 연습을 시킨다. 스웨덴은 현재 전 세계에서 성중립 대명사를 가진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2012년 그와 그녀를 대신해 소개된 성중립 대명사 ‘헨(hen)'은 이제 스웨덴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스웨덴 안에서도 가장 성평등한 유치원으로 손꼽히는 스톡홀름의 ‘니콜라이 유치원’은 아이 한명당 월 17만원만 부담하면 되는 공립유치원이다. 매년 300명이 입소를 기다릴 정도로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고, 교사 임금도 매달 420~670만원으로 상당하다. 이 곳은 대학에서 젠더 교육을 받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채용한다. 성별 뿐 아니라 한부모 가족, 동성 커플 등 다양한 가족 관계를 배려하며,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이 있다고 판단하면 상황에 맞게 지원한다. 자폐증 아이가 있을 땐 특수교사를, 말이 늦은 아이가 있을 땐 언어치료사를 채용하는 식이다.


뉴욕타임즈는 “성중립교육에서 교사들은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는 ‘사회공학자’의 기능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성중립 교육을 받은 유치원생들은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으며, 친구와 놀때도 성별을 특별히 가리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

4. 확실하게 보장된, 돌아갈 수 있는 일터


이러한 임출육의 지난한 기간이 끝났다고 해서 여성의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출산과 양육의 후폭풍이 지난 후, 우리는 다시 과거처럼 회사로 돌아가 커리어를 쌓고 싶다. 하지만 만약 육아 휴직 이후 내가 돌아갈 일터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다면 어떨까.


여성은 임신 기간 중 야근, 장거리 출장, 동료와 직장 상사로부터에게 소외됨으로서 어려움을 겪지만 직장 복귀 후에는 더 지난한 시간을 보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제도가 있음에도 이를 사용하는 여성들은 60%이고, 그 중 11~21%의 여성은 직장 복귀 시 고용 상 불리한 경험을 겪었다. 가장 큰 변동으로는 '업무 변경'이었다. 출산전후 휴가 사용과 육아휴직 사용자들에 대한 고용 상 불리한 변동은 근로기준법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2017년 여성정책연구원 이슈 페이퍼 "여성관리자의 임신, 출산, 육아 제도 사용" 중 일부


책 <아내 가뭄>에 따르면, 여자들은 아이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앞으로 그럴 거라는 예상 때문에 소리 없이 감점을 당한다. 그래서 평생 더 적게 번다. 또한 아내들은 그만둘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여기며 (자신들이 이미 적게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곧잘 기대대로 그만두고 그래서 임금도 더욱 적게 받는다. 복귀 후에도 여성들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대신 커리어 욕심을 내려놓고 현실에 순응한다. 이런 악순환은 계속 반복됨으로써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을 증발시키고 있다.


제도가 보장되어 있지 않으면 출산 자체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육아휴직 제도가 있어도 복귀 후 불이익을 받는 형태로 여성들은 차별받고 있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고,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안정적인 직장이다.






모성 신화에서 탈피하고

여성이 손해보지 않는 그 날을 위해


'임/출/육'을 여성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모성 신화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임신과 출산은 위험천만한 과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변화이며, 이 과정에는 여성 뿐만 아니라 가정, 기업문화, 공동체가 모두 함께해야 한다.


물론 나만 안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모토인 4B(非), 즉 비혼 비연애 비출산 비섹스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물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칫하면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수많은 기혼 여성들을 배제하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출산하는 여성은 수없이 많으며,대부분의 사람에게 출산은 중대한 사건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중대한 순간에 모든 여성들이 "손해 본다는" 감각없이 출산과 양육의 기쁨을 알아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이 왔을 때 내가 여전히 가임기라면, 말하겠다. why not?


산모에게 “도울 일 있으면 전화해”라는 말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주의 때문에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꾹 참고 그걸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번 주에는 화요일하고 목요일에 저녁 식사를 가지고 갈게. 언제 가져다주는게 좋겠어?”라고 말하자.

식사를 가져다주는 건 기정사실화되었기 때문에 산모는 언제가 가장 좋을 지만 말하면 된다.

- 로빈 스타인 델루카, <호르몬의 거짓말>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비혼/비출산주의자라고 해서 여성의 임신/출산/육아 문제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슬슬 내 주변 친구들도 결혼을 한다. 곧 임신을 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너의 출산은 너 혼자 끙끙 앓는 사적인 상황이 아니라, 공동체의 축복과 도움이 필요한 순간으로 여기게 도와주는 것,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여성들을 돕는데 기꺼이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다. "내가 도와줄건 없어?" 라고 묻지 않고, "화요일과 목요일에 저녁 식사를 가지고 찾아갈게" 라고 묻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상상 속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나의 방식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싣는 것이다.  




[참고자료]

- 로빈 스타인 델루카,  <호르몬의 거짓말>

- 애너벨 크랩, <아내가뭄>

- [성평등 유치원] ‘그’와 ‘그녀’ 대신 ‘친구’를 가르쳐요, 여성신문

- 여성관리자의 임신, 출산, 육아 제도 사용(2017),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고학력 여성의 ‘워킹맘되기’에 대한 문화역사적 활동이론적 접근(2018), 한국여성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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