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에서 만난 사람
오늘로 포르투갈에 머문 지 34일 째다.
지금은 포르투의 에어비앤비에서 2주째 묵고 있는데, 옆 방에는 한국인 남성이 일주일째 묵고 오늘 떠난다.
나는 이 분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왜 이 사람은 설거지를 할때 고추장이 다 세척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거지를 그만둘까. 왜 하수구에 라면 건더기가 온통 걸려있어도 치우지 않을까. 그냥 거름망 빼서 쓰레기통에 털면 그만인데. 왜 욕조에 머리카락 등등(아 묘사하기도 싫어)이 걸려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도 치우지 않을까. 본인이 씻은 이후에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는 걸까. 이 사람은 본인이 다시 사용할 때마다 깨끗한 것을 보고 요정 컴미라도 다녀갔다고 생각할까.
문제는 내가 이걸 굳이 말하기도 애매해서 내 선에서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저지른 것은 알아서 치우도록 내버려 두고 싶으나, 그 사람 다음에 내가 설거지를 하면서 저절로 같이 치우게 되는 식으로 스스로 우렁각시가 되어버린다. 내 건더기 걔 건더기 구분해서 내 것만 버릴 순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따로 발코니로 불러내서 한 마디 할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이 사람때문에 더 깔끔해진다. 혹시 나도 이 사람처럼 마땅히 해야할 일을 안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요리를 하거나 씻고 나서, 세탁기를 돌리거나 공용 공간을 사용하고 나서는 원래 했던 수준보다 한번 더 둘러보고 체크한다. 남들이 나를 보고, 내가 그 남자를 보고 생각하듯이 바라보진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상식과 염치의 부익부 빈익빈이 강화되는 걸까?
공유경제 기반 서비스는 무엇보다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이런 신뢰는 우선 기본적으로는 디자인된 시스템에서 나온다. CEO의 말에 따르면, 에어비엔비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것은 게스트와 호스트가 각자에게 남기는 후기들이라고 한다. 게스트가 호스트에게 예약 시 남기는 '본인 소개문' 역시 호스트가 게스트에 대해 믿어도 될지 확인하는 작업 중 하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개문이 너무 간단해서도, 너무 구체적이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제가 갑자기 숙부님이 돌아가셔서 당신의 숙소에서 슬픔을 치유하고 싶습니다" 이러면 이제 신뢰도가 뚝뚝 떨어지는 거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 어쨌든 신뢰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에서 온다.
하지만 동일한 시스템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건 사용자의 성격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그 남자에 비해 내가 남의 시선을 훨씬 더 신경쓰고 깔끔한 성격인 것은 아닐까. 그 남자는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무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그 사람이 그저 그렇게 살아도 무탈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무상식이 성격인 것이 아니라, 무상식이 가능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가사에 무신경하게 살아도 문제없었던 건 아닐까. 상식없이 살아도 괜찮은 것은 특권이다. 그리고 특정 집단(라잌 '여성')에 나처럼 소심한 성격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면, 이건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
난 이 사람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 내게는 매우 상식인 기본적인 가사 스킬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을 그 인생이 신기할 뿐이다. 라면 건더기도 못버리는 그 인생이 부럽지는 않다. 하지만 이 사람이 평생 그렇게 누군가의 조용한 도움을 받아 영영 청소를 마무리하는 방법 같은걸 모르고 살거라 생각하면 그건 좀 부럽다. 솔직히 가끔 화나서 이 새끼는 지 씻고 마무리도 못하면서 왜 에어비앤비에 묵고 지랄이야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ps. 그 남자는 냉장고도 치우지 않고 갔다. 그래도 그 사람이 주고 간 고추장으로 오늘 떡볶이 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