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 <스미더린>이 던지는 두 가지 화두
블랙미러가 드디어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왔다. 한 달 전부터 블랙미러가 등록되기만 기다린 나는 시리즈가 공개된 5일 당일, 새로운 에피소드 3편을 연달아서 봤다. 비록 이전 시즌만큼의 충격이나 감동을 자아낼 에피소드는 없었지만, 근미래의 현실감 있는 디스토피아라는 블랙미러만의 세계관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편은 2화 '스미더린'이다.
'블랙미러'는 핸드폰이나 모니터의 검은 화면을 의미한다. '스미더린' 에피소드는 이 검은 거울에 지배당하며 붕괴하는 삶의 규범과 개인의 추락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나는 해당 화를 시청하며 최근 고민하고 있는 IT 산업에 대한 두 가지 화두를 고민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디지털 중독과 새로운 계급 사회, 두 번째는 디지털 프라이버시에 대한 것이다.
극 중 '스미더린'은 현실 세계의 트위터를 그대로 본떠 만든 세계 최고의 소셜미디어 회사다. 주인공 크리스는 우버와 같은 콜택시 운전수로 등장한다. 항상 스미더린 본사 앞에서만 고객을 받는 그는, 젊은 스미더린 직원 제이든을 납치해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 총을 겨누고 말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스미더린의 CEO인 빌리 바우어에게 전화하라고.
콜택시 운전수가 인질극까지 벌이며 소셜미디어 회사의 수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기존의 블랙미러 애청자라면 어렵지 않게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크리스는 소셜미디어 중독으로 인해 어떤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해당 서비스를 개발한 스미더린 대표와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가 세계적인 CEO와 접근할 현실적인 방법이란 없기에, 우선 스미더린 직원 한 명을 납치하고 본 것이다.
크리스의 생각처럼, 소셜미디어의 중독은 기업이 계획한 것일까. 스타트업 창업자이자 구글 엔지니어였던 트리스탄 해리스는 사람들을 중독시키려는 IT 산업의 비밀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다. 그는 신기술의 중독성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 치밀하게 예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앤더슨 쿠퍼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핸드폰을 일종의 슬롯머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앤더슨 쿠퍼 : 실리콘 밸리는 앱을 프로그래밍하는 겁니까? 사람들을 프로그래밍하는 겁니까?
트리스탄 해리스 : 사람들을 프로그래밍합니다. 기업들은 당신이 특정 방식으로 오래 자신들의 기술을 사용해 돈을 벌 수 있도록요.
페이스북의 초대 대표인 숀 파커 역시 2017년 한 행사에서 페이스북이 사용자의 중독을 강화시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대해 밝혔다.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시간과 금전적 이익을 최대한 많이 갈취하기 위해 사용자들의 도파민을 자극시키는 방법을 연구한다. 좋아요나 댓글, 스토리,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인터페이스는 모두 사용자의 도파민을 자극시켜 페이스북에 시간과 주의를 오래 쏟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IT 기업은 '소통', '연결'과 같은 이상적인 관념으로 기업 가치를 트렌디하게 홍보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기술로 중독시키는 것이다. 고객의 가치는 데이터와 시간의 사용 정도로 매겨지며, 기술 산업은 중독으로 무너진 개개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혹자는 고객을 사용자(user)라고 부르는 산업은 마약 업계와 IT 산업밖에 없다고 우스갯소리 삼아 얘기하기도 했다.
타인을 중독시키는 것도 권력이지만, 기술에 중독당하지 않는 것도 권력이다. 크리스가 치열한 인질극을 벌이며 소셜미디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때, CEO인 빌리 바우어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러 한적한 바위산의 별장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이 장면은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계급 격차를 시사하고 있다.
빌리 바우어처럼 실제로 수많은 실리콘밸리의 CEO들은 디지털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명상과 요가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아이들은 집에서 아이패드를 쓰지 못하게 했고, 페이스북 창업가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들의 딸은 13세 이전에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지 못하게 할 것이라 공언했다. IT 기업의 기득권이 디지털에 중독되지 않는 방법을 수련할 동안, 현실 세계의 수많은 시민들은 그들이 만든 기술에 계속해서 중독되고 있다. 흔히 기술은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하지만, 블랙미러가 그리는 세계 속에서 디지털 격차와 계급 사회는 더욱 강화된다.
<스미더린> 편에는 '스미더린’ 말고도 또 하나의 소셜미디어가 등장한다. 바로 현실의 페이스북을 모방한 ‘페르소나’라는 SNS다. 제임스가 단체 심리 상담치료를 하며 만난 린다라는 여성은 이유도 모르고 자살한 딸의 진실을 알기 위해 애쓴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딸의 페르소나 계정 로그인을 시도하는 것이다.
린다는 매일 계정에 로그인을 시도하지만, 3번 틀리면 24시간 접속이 중단되기 때문에 다이어리에 비밀번호 경우의 수를 모두 적어두고 시간 날 때마다 페르소나에 접속한다. 고인의 계정은 '추모 계정'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고인의 정보와 포스트가 모두 삭제되기 때문에 린다는 계정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애쓴다. 나는 린다와 페르소나를 보며 궁금한 점이 생겼다. “죽은 자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질 수 있는가?"
페이스북에는 린다가 언급한 ‘추모 계정’이 실제로 존재한다. 페이스북이 공식적으로 ‘기념 계정(legacy contact)’이라고 부르는 인터페이스는 죽은 자를 남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든 추모 계정이다. 직계 가족임을 증명하면 기념 계정의 담당자가 되고, 직계가족이 아닌 경우에도 위임장을 제출하면 관리자가 될 수 있다.
극 중 '페르소나'의 추모 계정은 직계 가족에게도 정보보호의 문제로 고인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지만, 실제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은 조금 다르다. 추모 계정의 담당자가 되면 지난 게시물, 사진 등 타임라인에 공유된 항목의 삭제와 변경이 가능하다. 심지어 다른 친구들에게 보낸 메시지까지 읽을 수 있다. 이는 과연 고인이 원하는 바일까?
내가 죽은 후, 내가 소셜 계정에 올린 글들을 가족과 친지들이 본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직계 가족이라고 해서 고인이 SNS에 올린 기록과 사생활을 볼 권한은 없다. 설사 내 계정의 담당자가 정해지지 않는다고 해도 죽은 자의 전 생애에 걸친 전례 없는 데이터는 삭제되지 않은 채 한 기업의 클라우드 속을 떠돈다. 기업에게는 그들의 데이터를 사용할 권리가 있을까? 여기에는 죽은 자의 사후 결정권, 디지털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페이스북에는 산 자보다 죽은 자의 프로필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한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매년 13%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르면, 2100년에는 페이스북에 약 50억 명의 고인 프로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죽은 자에 프라이버시에 대한 법이나 관례는 거의 없다. 프라이버시나 데이터 보호법이 전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구를 공동 집필한 칼 오만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역사상 거의 모든 대륙에 걸쳐 이렇게 방대한 인간의 데이터와 기록이 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데이터가 개인 회사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적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오만의 말처럼, 클라우드에 떠도는 수많은 데이터가 국가나 공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의 손에 있다는 사실은 찝찝하다. 과연 이 모든 정보를 사기업에 가지고 있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 우리에게는 죽은 자의 자기 결정권과 데이터 보호에 대한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
블랙미러 시즌 5 “스미더린”은 현재의 소셜미디어, IT 산업의 기업들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와 부작용을 보여준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같은 동시대의 기술 산업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설계 단계에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근시안적으로 서비스를 개발해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고, 유저가 사망한 후 후 프라이버시와 남겨진 데이터에 대한 적합한 처리 방식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칼 오만은 어떤 일이든 지금 당장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지적한다. 기업이 선한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술이 세상을 진화시킬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에서 벗어나 선제적으로 미래에 일어날 상황을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 사회학자 Zeynep Tufekci의 말처럼, 이제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기계에게 떠넘겨서는 안 되는 시기에 도래했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회일수록 도덕과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고 법적 규범에 대해 새로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은 우리가 만든 가치관 안에서 이용되어야 하고, 기업들을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블랙미러가 가상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며 던지는 메시지는 언제나 같다. “최악의 미래는 어떤 식으로든 온다. 우리가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면.” 근(近) 미래가 아닌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스미더린' 편은, 어쩌면 디스토피아가 이미 당도했음을 경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참고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