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집 Jan 05. 2020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2019년의 잘한 일


2019년, 무엇보다 잘한 일은 글쓰기 수업을 들은 일이다. 서울자유시민대학에서 열리는 이문재 시인의 <나를 위한 글쓰기 : 자기 성찰과 재탄생> 수업이다. 해당 수업을 알게 된 계기는 조한진희 작가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읽으면서였다. 작년에 읽는 책 베스트 5안에 드는 책이었는데, 그 책 에필로그에는 이문재 선생님 대한 감사 인사가 적혀 있었다.


“글쓰기 책조차 읽어본 적 없는 내가 이나마 글을 쓸 수 있기까지는 시인 이문재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몸이 회복되어갈 즈음, ‘자기 성찰과 재탄생’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신청했던 수업에 가보니, 글쓰기 과정이었다. 글을 통해 지난 삶을 반복적으로 돌아보게 되었고, 그 수업을 마치고 보니 글을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좀 더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마흔 명의 수강생 중 한 명이었지만, 일대일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감사드린다”


내 세계를 흔들 만큼 좋은 글을 쓰는, 내게는 너무나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이나마 글을 쓰게 되기까지”라고 말하다니. “글을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더 알게 된” 수업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좋은 수업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도 지난 삶을 본격적으로 돌아보고픈 욕구가 있었다. 이후 나는 서울시 평생학습포털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언제 수업이 개강하는지, 제일 먼저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서.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경희대에 간 날이었다. 이문재 선생님은 수업명의 의미를 설명했다. "자기 성찰을 해야, 비로소 재탄생을 할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자기성찰과 재탄생 방법은 글쓰기였다. 선생님은 "글을 쓰는 건 멈추는 일이다. 이 시대에 혼자 있을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밖에 없다”라는 말도 했다. 1년 가까이 혼자 여행하며 글을 썼는데도, 나는 아직 혼자 있기에 대한 갈망이 컸다. 아마 그건 내가 숨겨두고 쌓아온 이야기가 아직 많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나쁜 습관은 저절로 이뤄지지만 좋은 습관은 어렵다고도 하셨다. 첫날 수강생의 절반 정도가 떨어져 나가지만, 남은 사람들은 ‘글쓰기 정규직’이 되어 소중한 친구가 될 거라고도 했다. 


선생님은 글을 쓰는 궁극적인 이유가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었다. 수업을 통해서는 9번의 글을 쓰는데, 생애 최고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장소 등 20살 이전 유년시절의 이야기에서부터 내가 분노하는 사회 문제, 내가 원하는 한국 등 사회적 글쓰기로 넓어진다. 나를 성찰하고 재탄생한 후에는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사회'로 눈을 돌려야 한다. 선생님은 아홉 편의 글을 쓸 때 본인만 등장하는 경우가 없을 거라고도 했다. 산다는 건 관계 속에서 가능한 것이니까. 


첫 번째 주제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20살 이전 유년∙성장기로 시기를 못 박았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아챌 수 있는 과거의 장면을 재해석하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떤 젊은 여성의 글을 들려주기도 했다. 열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그는 엄마와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지는 순간에 대해 썼다. 엄마는 버스가 오자 그의 손을 놓고 버스를 탔고, 그건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는 이 장면을 엄마가 나를 버린 날로 계속 기억했다. 그런데 그는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나도 엄마를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나도 엄마를 버렸구나.” 글을 쓰면 고정적으로 여겼던 진리들, 이를테면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확실한 구분이 흐트러진다. 글을 쓰지 않으면 알 수 없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글을 쓴다. 


그렇게 매주 경희대로 갔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분당선 안에서 내내 다음 주 글쓰기 주제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많이 힘들었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모두를 날려버리는 것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처음엔 각 잡고 책상에 노트를 피고 직선을 그었다. 8살부터 19살까지 눈금을 선 위에 기록하고, 떠올릴만한 순간을 찾아보려는 심산이었다. 샅샅이 과거를 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글쓰기가 익숙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익숙하지 않고 힘들기만 했다. 그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만 썼지, 내게 던져진 주제로 삶을 거슬러 올라가 반추해보지 않았다. 


매주 받는 선생님의 비평과 글쓰기 동료들의 응원도 소중했다. 매주 글을 온라인 카페에 올리고 수강생들이 댓글을 달았다. 선생님은 댓글은 무조건 좋은 말만 쓰라고 했다. 어차피 안 좋은 습관이나 수정할 부분은 본인이 현장에서 지적할 거니까(!) 어느날 선생님은 수식어구가 잔뜩 들어간 내 글을 보고  “멋 부리는 것은 자해행위다”라고 말해주기도 했고, 어느 날은 “나보다 잘 썼으니 다음 주부터 강의하세요”라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언젠가 내 글을 읽고 생각난 시를 추천해주시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어떤 분은 내 글을 읽고 울었다며 조용히 말씀해준 날도 있었다. 다음 주엔 내가 그분의 글을 보면서 울었다. 일기는 안 쓰지만 어디 담벼락에라도 기록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들이 10주간 수없이 생겼다. 


글쓰기는 쓸수록, 그리고 좋은 선생님이 있으면 정말 급속도로 성장한다는 것도 느꼈다. 수업에는 ‘00 주부’라는 닉네임을 가진 중년의 여성분이 계셨다. 아름다운 삶을 글로 쓰시는 분이었지만 시를 중심으로 쓰셨는지 산문이라는 형식에 딱 맞지 않는 분이었다. 몇 주간 이문재 선생님은 00 주부님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해주시면서도, “피드백할게 많은 사람이 승자다. 피드백할 게 없으면 수업 듣는 의미가 없다”라고 힘을 주기도 했다. 선생님 조금 더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셨고,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 글쓰기의 악습관을 과감하게 쳐낼 수 있게 가지치기를 도와주셨다. 나는 00 주부님의 글이 매주 급속도로 좋아지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글쓰기는 쓰면 쓸수록 좋아지는구나. 그분의 글은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라 종종 카페에 들어가서 읽는다.


수업을 듣는 10주간 행복했다. 취업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스터디나 학원보다 경희대에 가는 게 더 기다려지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 수업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아마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는 방증이겠지. 선생님은 일주일 내내 글쓰기만 생각하라고 했다. “글을 쓰는 건 피투성이의 시간이다.”라며. 지나간 나를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글쓰기 수업은 발견당하길 기다리는 삶의 의미들을 기꺼이 찾는 시간이었다. 






한동안 글을 안 올리다 요즘 브런치에 글을 다시 올리고 있다. 이건 <마감의 기쁨과 슬픔(이하 ‘마기슬’)>이라는 온라인 글쓰기 마감 모임 덕분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확한 계획 없이 사람들을 모아 시작한 모임이었다. 나름 우리는 ‘글쓰기 정규직’이 되어 매주 목요일 글을 쓰고 각자의 계정에 올린다. 그리고 각자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단다. 재밌고 즐거운 이야기도, 지나간 나를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도 있다. 


이문재 선생님 수업과 '마기슬'을 하며 알게 된 것은 글을 쓰는 데는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지나간 나를 마주할 용기다. 두 번째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할 용기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마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선 쓰고, '에라 모르겠다' 올려버리기. 


요즘에는 마기슬을 통해 매주 두 번의 용기를 낸다. 미뤄왔던 아빠에 대한 글도 덕분에 올린다. 놀라운 것은 다른 사람의 용기에 더 용기를 받는, ‘용기의 무한궤도’를 볼 때다. 대책 없이 자기 얘기를 해버리는 사람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나도 더 용기을 내서 글을 올린다. 누가 읽고 비판할 것이란 슬픔보다 글쓰기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는 기쁨이 더 클 때가 온다. 그건 어떤 글을 쓰든 꼼꼼히 읽고 정성어린 응원과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멤버들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글쓰기 모임을 갖고 수업을 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혼자 있으니 글을 안 써서 ‘마감’의 용도로 거칠게 생각하고 연 모임이었는데, 어째 내 마감보다 남의 글 읽는 시간이 더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이 글을 읽는 마기슬 멤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2020년에도 ‘글쓰기 정규직' 동료로서 열심히 글을 써보자고 말하고 싶다. 


1년은 52주니까. 우리 도합 52번의 용기를 내봅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