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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Sep 13. 2018

대치동 소화기

"반드시 스카이를 보내준다"는 학원에서 알바한 후기

한 칼럼에서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소화기를 터트린 중학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1교시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갑자기 교실 한 가운데서 안전핀을 뽑아 분말가루를 사방에 뿌렸다고 했다.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던 이 학생은 평소 “소화기를 터뜨리고 싶다”고 주위에 얘기했다고 한다. 교실은 난장판이 됐고, 그 반에 있던 학생들은 빈 교실이 없어 옆 건물로 걸어서 이동해 급하게 수업을 했다고. 교실이 난장판이 되고 문제집과 가방이 분말가루에 축축하게 젖어도 대치동 학원의 수업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2013년부터 약 2년간 ‘스터디코드’라는 곳에서 학원 알바를 했다. 대치동에 있는 사교육 학원인데, 학업을 알려주는게 아니라 서울대 3000여명의 노하우를 압축한 ‘공부법’을 알려주는 코치 역할을 수행하는 아르바이트다.  “스터디코드는 공부 때문에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학생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현재 스터디코드의 캐치프레이즈다. 하지만 그때의 모토는 좀 더 직설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스터디코드는, SKY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이라 평가받는 학생들을 SKY에 반드시 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반드시 SKY에 보내준다니. 이렇게 당당하게 대놓고 학벌주의를 표방하는 모토에 많은 학부모들은 현혹됐다. 수많은 언론에 나와 “서울대만 들어가면 인생핀다”를 역설하는 CEO에 지푸라지라도 잡고 싶은 학부모들은 거리낌없이 돈을 안겼다. 공부법 하나 배운다고 갑자기 서울대를 갈리가 만무한데도 말이다. 공부법을 배우는 기본 프로그램과 추가 프로그램 몇개만 해도 백만원이 넘어가는 금액이었지만 대기하는 학부모들로 학원은 항상 북적거렸다.


하지만 실제로 코칭을 하는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서울대 학생 삼천여명의 노하우를 압축시킨 노하우가 이 친구에게 과연 맞을 확률이란… 반마다 30%는 별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부모님때문에 억지로 온 학생들이었다. 물론 소수의 학생들에겐 이 방식이 도움이 됐고 실제로 SKY에 간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별로 관심이 없거나, 노력하더라도 큰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정말 열심히 하는 몇명의 학생들은 내게 찾아와 “정말 이렇게만 하면 스카이에 갈수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들을 격려하며 현실적인 대안을 조심스레 제안해줄 수밖에 없었다.


잘 가르치는 코치들에게는 10%씩 인센티브가 붙었다. 나는 2년 가까이 일했지만 한번도 인센티브를 받아본적이 없다. 대학시절 내내 과외와 학원알바를 했지만 “나는 가르치는 것에는 정말 소질이 없구나”라는 것만 깊이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회사에 다시 교육 부서로 취업했지만…) 반드시 스카이에 보내준다는 공부법을 달달 외워 아이들에게 가르쳤지만 정작 나도 이걸 믿을 수가 없었다. 너희는 이렇게만 하면 스카이에 갈거라며 학원의 방침을 열심히 전파했지만, 정작 스카이를 나온 나는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해외를 떠돈다.


대치동의 맹목적인 단 한가지 가치, 학벌 주의. 걔네가 그렇게 염원을 한 좋은 학교에 들어가 졸업을 하면 이제 또 취업 시장으로 뛰어들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지. 이게 맞나? 긴가민가하겠지만, 다들 이게 좋다고 하니까, 여기 밖엔 방법이 없어 보이니까, 남들이 다 원하는 곳이니까 또 목매달고 준비할거다. 과락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회적 기준선에 꾸역꾸역 나를 맞추고, 수많은 자격증과 대외활동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되겠지.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도 휴대용 소화기를 사무실에 뿌리고 싶은 욕망은 그대로다. 소화기면 다행이게, 불을 지르고 싶어질거다. 그리고 넌 퇴사하고 미얀마에 오게 되겠지. 나처럼!


회사에 들어가도 휴대용 소화기를
사무실에 뿌리고 싶은 욕망은 그대로다.
소화기면 다행이게, 불을 지르고 싶어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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