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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08. 2020

직장에서 죽지 않는 법

우리는 아플 만해서 아프다

몇 달 전의 일이다. 가끔씩 외가인 안동에 가는 엄마는 어느 날 외할아버지의 푸르댕댕한 손을 발견했다. 일을 하다 다쳤다는 할아버지의 손은 못에 찔려 풍선처럼 부어 있었다. 손이 그 모양인데도, 할아버지는 병원도 안 가고 허술한 자가 치료로 버티고 있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엄마는 할아버지를 데리고 피부과에 갔다. 병원에서도 할아버지는 한사코 손 치료를 거부했다.


“아버지, 병원에 왔을 때 치료해야죠. 파상풍 크게 되면 문제 될 수도 있어요.”
“손에 깁스하면 일 못 간다.”


엄마는 피부과에서 눈물이 차오르는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해고될까 봐 치료는커녕 병원조차 가지 않으려 했던 할아버지는 올해로 여든넷이다. 연세에 비해 정정해서 아직 장작도 패고 작은 크기지만 논밭도 관리한다. 요 몇 년간은 집 근처 추모 공원에서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주 업무는 추모객들이 두고 간 조화를 정리하고 잡초를 뽑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이 나이에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그곳은 나도 가본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미리 당신들의 묫자리를 사신 곳이다. 


여동생은 피자헛에서 일한 지 이제 반년이 되어간다. 근무 시간은 10시부터 14시, 총 4시간이다. 원래 일하던 곳 공장이 파산하고 1년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몇 번이나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다. 피자헛도 장애인 채용 알선의 일환으로 간신히 얻은 일자리였다. 근무 시간과 월급 등 조건이 애매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엄마와 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동생의 말에 안도했다. 그러나 얼마 후, 동생만 유일하게 점심을 못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격분했다. 일하는 시간이 짧은 동생에게는 점심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매니저들끼리 밥을 먹을 때, 동생은 계속 일해야 했다.


할아버지는 손을 치료하면서도 의사에게 계속 ‘깁스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다행히 깁스할 정도는 아니라 약을 바르고 끝났다. 우리의 성화에 못 이겨 매니저에게 식대 제공을 문의한 동생은 “근무 4시간 초과일 경우에만 식대 제공”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교묘한 커트라인이었다. 매일 30분 일찍 출근해서 매장 청소를 하는 시간은 당연히 근무시간에 포함해주지 않았다. 결국 공단 공무원이 피자헛 본사에 연락해준 끝에 선심 쓰듯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메뉴는 항상 콜팝 치킨과 인스턴트 파스타다.


할아버지는 깁스를 안했고, 동생은 점심을 먹는다. 해결된 듯 보이지만 쉬이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회사가 선심을 써줘서, ‘어쩌다가’ 해결된 문제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주변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그게 문제인지 조차 인식하지 못한 당사자들의 ‘자기 탓’이었다. 내가 건강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회사와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침묵하는 사람들. 쉽게 내 무능력을 탓하고, 죄책감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근로자들. 이 곳마저 다니지 못하게 될까 봐. 




[메모] 유족급여 산재신청 관련

신청 사유 : 과로사 
해당 근거 : 2교대 야간 근무로 인한 건강 악화. 한 달 전 해고 통보로 인한 스트레스 축적. 


6개월 전, 아빠 친구는 노무사를 한 명 소개해 줬다. 그와 면담하기 전,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상황을 정리해보려 했다. 원래 심근경색이 있어 기존 병력이 유족급여 신청에 문제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유사사례를 검색했다. ‘심근경색 같은 뇌심혈관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과로가 인정되면 산재처리가 된다.’ 과로도 급성∙단기∙만성 과로로 세분화되었었다. 얼핏 보기에 아빠는 모든 과로의 조건을 다 충족하는 듯했다. 야간 근무, 해고 통보 …. 노무사를 만나면 유사 사례에서 승소한 경험이 있는지도 물어봐야지, 그렇게 노무사 사무실로 향했다. 


면담은 예상과 달랐다. “이 정도면 사실 많이 어렵죠. 더 심한 이유로도 죽고 다쳐도 승인받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몇 달을 매달려야 간신히 될까 말까예요” 노무사는 아빠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적당한 정도’의 승소 케이스를 보여줬다. 인천 공사장 포크레인에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의 산재 승인이었다. 


“이 분 동료부터 해서 샅샅이 조사했죠.. 이 분은 그래도 살아계시잖아요? 유족급여는 당사자가 죽어서 입증하기도 까다로워요. 과로사를 증명하기 쉽지 않아요.”


‘산재 신청이라는 게 그렇게 쉬울 줄 알았어?’라는 뉘앙스. 한편으로는 기시감이 들었다. 고압적인 태도, 가르치려는 말투, 내가 어떤 말을 하면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하며 무시하는 듯한 모습. 장례식 이후 만난 모든 중년의 남성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현미 녹차가 담긴 종이컵을 매만졌다. 네네, 그렇죠.. 알겠습니다. 속으로 생각했다. '자격 미달이라고 하기엔 사람이 죽었잖아? 사망보다 더 충족되는 자격이 어디 있어?’


아빠는 얼마만큼 더 확실해야 했나? 확실한 과로사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초과 근무를 했어야 했나? 왜 나는 다른 ‘확실한 죽음’과 비교하며 아빠의 죽음의 무게를 저울질하고 있을까? 혼란스러운 감정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 날의 면담의 수확은 납처럼 무거운 무력감이 전부였다. '이 정도로는 보통 승인이 안되는구나', ‘그러게, 애초에 아빠와 친하게 지내며 어떻게 일하는지 알았어야지’, ‘부검을 했어야지’, ‘큰 딸이면서도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니’….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자괴감, 아픈 몸에 대한 죄책감, 이 모든 것은 개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플 수밖에 없는 곳에서 산다. 




얼마만큼 건강해야 우리는 회사가 요구하는 노동을 충족시키면서도 죽지 않을 수 있을까? 8시간 이상의 노동, 야근과 교대 근무, 해고 통지를 받고서도 몸과 정신이 건강한 노동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작가가 지적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건강한 몸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건강한 몸이 수행할 수 있다고 규정된 양을 꾸역꾸역 하면서 살아간다. 건강에 대한 높은 사회적 기준 다시 모든 책임을 개인으로 돌린다. 불확실한 노동 시장 속에서 개개인은 아픈 몸을 숨긴 채 살아간다. 필연적으로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다.


한국은 한해 약 2000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그러나 산재 통계는 산재 인정 뒤 유족급여 지급일 기준으로 산정되며, 산재 승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산재 신청이 가능한지 조차 모르거나, 사업주와의 의견 충돌이 두려워 신청조차 하지 않는다. 몇년 전 가습기 살균제 조사를 위해 방한한 유엔인권위원회는 산재보상 청구인에게 부과된 과도한 입증책임 때문에 보상을 받기 어려운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엔 이런 말도 있었다. “산재보험 체계와는 별도로, 피해를 구제받아야 할 노동자/피해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1차적 책임 주체인 정부가 수행한 대책의 수준이 놀랄 만큼 낮다


다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사는 삶은 무척 힘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애를 써도 질병과 죽음은 우연하게 온다. 어떤 사람은 유연하게 상황을 대처하지만, 어떤 사람은 삶의 우연성에 대책 없이 무너진다. 갑자기 아플 때, 직장을 잃었을 때, 생계 보장이 어려울 때,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국가의 현존을 느낄 수 없다. 우리에겐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갑자기 빠지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우연에 삶을 맡기기에는 인생은 고작 한 번뿐이다. 




6개월 전 나는 다른 노무사와 계약을 맺었다. 반년간 몇 번의 조사와 면담이 이어졌다. 얼마 전 결과가 떴다. 불승인이었다. “신청 이유와 업무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일치된 의견’이었다. 담담했다. 오히려 받으면 의외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심사청구, 행정소송을 할 수 있으나 나나 노무사나 별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소극적으로 만들었는지 곱씹어본다. 그간의 시간은 무기력을 학습하는 과정이었다. 기업을 이길 자신이 없고, 국가에 대한 의구심은 커졌다. 


반년 전 엄마와 나는 아빠가 ‘직장에서 죽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적어도 장례 지원과 산재 신청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건 다행이 아니다. 아무도 직장에서 죽지 않아야 비로소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원하는 걸까? 그러나 너무 적은 걸 원하면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히 드러나기 어렵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사회는 더 위험해진다. 아,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아픈 몸에 대한 자책감이다. 우리는 아플 만에서 아프다. 우리에게는 아플 권리가 필요하다. 자책감은 무책임한 사회에게 저버리자.

-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이 글의 제목과 부제도 조한진희 작가의 책에서 따왔습니다.






매거진 소개 ⎮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삶은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같지도, 내 삶은 <애도일기>를 쓴 롤랑 바르트 같지도 않았다. 이것은 애도의 일기가 아니다. 이것은 아빠가 죽은 후 진동하는 삶의 기록, 죽음과 삶에 대한 엇갈린 고찰, 남겨진 자가 삶을 처리하는 서툰 기록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적절한 애도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오길 바란다. 프롤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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