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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13. 2020

팥 없는 붕어빵 가족

익숙하지 않을 뿐

우리 동네에는 티브이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오래된 붕어빵 맛집이 있다. 초등학생 때, 나는 4, 9가 들어가는 날이면 시장으로 달려 나갔다. 오일장마다 시장 한가운데 선 좁은 붕어빵 노상엔 사람으로 가득 찼다. 안 그래도 좁은 시장 골목이 더더욱 막혔다. 그만큼 그곳은 특별했다. 몸통이 굵은 왕붕어를 찍어내는 기름칠한 틀, 쫄깃한 수제 반죽도 좋지만 무엇보다 팥이 핵심이었다. 그곳의 팥앙금은 물고구마가 들어간, 사장님만의 특제 소스였다. 


팥이 맛있는 붕어빵 가게에서 우리 가족은 꼭 팥 없는 붕어빵을 시켰다. 팥 없는 붕어빵은 팥을 못 먹는 내 여동생의 취향이었다. '앙꼬 없는 찐빵'의 클리쉐와는 달리, 앙금 없이 하얀 배를 가진 그 붕어빵의 맛은 꽤 먹을만했다. 수제 반죽 자체가 계피가 들어가 향긋하고 맛있는 탓인지, 그 자체만으로도 쫄깃하고 바삭했다. 원래는 팥이 있어야 할 부분에 모두 반죽이 들어가서 약간 덜 익은듯한 맛이 나는 것도 은근한 별미였다.  


팥 없는 붕어빵은 미리 사장님에게 따로 제작 요청을 드려야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문제일 뿐, 사장님은 흔쾌히 동생만을 위한 팥 없는 붕어빵을 만들어주었다. 나는 엄마가 사장님에게 “팥 없는 붕어빵도 2000원 치만 추가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사장님이 “아~ 또 오셨구나~ 좀만 기다리세요”하고 단골손님인 듯 대우해주는 것을 내심 좋아했다. 사장님은 팥이 없는 부분을 구별하기 위해 검은 붕어빵 틀에 반죽을 슬쩍 묻혀놓았는데, 그건 우리만을 위한 특별 표식 같았다. 주문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팥 없는 붕어빵? 그것도 가능해줘?”, ”우리도 시켜보자”하고 덩달아 시키면 마치 내가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뻐기고 싶어 졌다. 


그래도 번거로운 주문을 드리는 게 죄송해 한번 살 때마다 10마리 이상을 샀다. 그렇게 흰 종이봉투 두 개는 써야 담을 수 있는 붕어빵을 부엌에 놔두면, 온 가족이 틈날 때마다 주워 먹었다. 나는 무조건 꼬리부터 먹는 파였다. 동생은 지느러미부터, 아빠는 머리부터 먹었다. 엄마는 독특하게도 붕어빵을 '찢어' 먹었다. 팥 없는 붕어빵도 처음엔 동생만 먹다가, 나중엔 온 가족이 좋아하는 주전부리가 되었다. 각자 먹는 방법도, 좋아하는 것도 다르지만 어쨌든 모두 붕어빵이었다.  


내 동생에게도 팥 없는 붕어빵 같은 면이 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동생은 해산물을 먹지 않는다. 가족들 모두 TV 앞에 앉아 드라마 <태조 왕건>을 볼 때도 OST가 무섭다며 보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동생을 놀릴 때 태조 왕건 노래를 흥얼거린다.) 부모님이나 나나 내향적인 편인데, 여동생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놀자판이 벌어지면 게다리춤을 추며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타입이다. 여동생에게 발달 장애가 있다는 것은 우리 가족의 수많은 차이 중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집에서 가장 귀여운 붕어빵이었다. 




최근 붕어빵 가게는 사장님이 돌아가셔서 오래 문을 닫았다가, 아들이 다시 가게를 열었다. 붕어빵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붕어빵을 계속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기뻤다. 붕어빵 가게가 세대교체된 것처럼, 언젠가 우리 집의 모습도 많이 바뀔 것이다. 천천히 우리 가족의 미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한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와 세 모녀의 미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나는 엄마에게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동안에는 독립해서 혼자 살겠지만, 나중에 엄마가 떠난 이후에는 동생과 같이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 말에 크게 안도한 모양이었다. “엄마 소원은 딱 하나야. 네 동생보다 오래 사는 거” 


언젠가 브런치에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이후에도 비슷한 댓글을 받은 적이 있다. 발달장애인 자식을 둔 어머니의 댓글이었다. “장애인 자식을 가진 부모의 소원이 있다면, 자식보다 하루 더 사는 거예요.” 어쩐지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비혼을 생각하는 것은 동생 때문에 아니라 나의 삶의 가치관 때문이다.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비장애인 형제자매가 가지는 부담이 죄책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돌봄이 사회화되지 않는 사회에서 장애인 가족은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희생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죄책감에 빠진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누구도 희생되어서는 안되는 데도. 


떠나는 사람이 걱정 없이 떠나고, 세상의 모든 장애 가족이 잘 살 수 있는 법이 무엇일까. 이를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요즘이다. 얼마 전에 정의당에 출마하기도 한 장혜영 감독은 발달장애인 자매 장혜정 씨의 탈시설과 공존을 다룬 <어른이 되면>을 제작했다. 그는 동명의 책에서 장혜정 씨와 일상을 기록한 유튜브 제작의 소회를 남긴다. 그는 디즈니랜드 여행 등 평범한 브이로그를 유튜브에 올리며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놀랍도록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그저 평범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서 장애인의 부재가 극명하게 환기된다는 사실이었다. '일상적'인 것,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비로소 혜정이에 대해,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삶에 대해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내용과 형식을 명확히 자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상성과 평범성의 회복이었다. " - 책 <어른이 되면>


팥 없는 붕어빵, 그저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한 번 맛보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 평범한 매력을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도록 기회가 되면 글을 쓰는 것은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다. 





매거진 소개 ⎮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삶은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같지도, 내 삶은 <애도일기>를 쓴 롤랑 바르트 같지도 않았다. 이것은 애도의 일기가 아니다. 이것은 아빠가 죽은 후 진동하는 삶의 기록, 죽음과 삶에 대한 엇갈린 고찰, 남겨진 자가 삶을 처리하는 서툰 기록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적절한 애도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오길 바란다. 프롤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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