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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Jan 24. 2020

비혼의 할머니가 될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남자 형제가 있으면 좋은데”
"사위라도 있어야지”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남자라는 성별은 가정의 큰 대소사를 관장할 권력을 차지했다. 이때까지 들었던 말들도 스쳐 지나갔다. 혼자 오피스텔을 구할 때는 “부동산은 남자랑 같이 봐야 무시 안 당해. 꼭 대동하고 가.”, ”위험하니까 원룸 말고 신축 오피스텔로 구해. 돈 더 들더라도 보안 잘 되어있는 곳으로.” 혼자 살고 싶다고 하면 “그러다 늙어서 아프면 어떡해? 누가 돌봐줘?”, 홀로 긴 여행을 간다고 하면 “좋을 때다. 젊었을 때 많이 여행 해. 결혼하면 하고 싶어도 못해”


결혼을 기본으로 상정하고, 비혼의 상태를 불완전한, 안전하지 못한, 철없는, 미완성의 상태로 보는 시선들. 비혼이 아니라 언젠가는 ‘팔릴’ 미혼으로 보는 시선들.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이 내가 결혼하기 바라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나는 비혼으로 살고 싶다는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르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지금보다 좀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 내게는 분명한 청사진이 필요하다.




1인 비혼 여성을 정상가족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국가로썬 꽤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여성이 밤에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보다 여성 스스로가 비싸고 안전한 오피스텔을 구하게 방치하는 편이 비용과 편익 면에서 더 경제적이다. 사회는 안전망을 강화하는 대신, 여성을 가부장제라는 남성의 비호 안으로 들어가라고 조장한다. 질병 관리와 돌봄 노동 역시 정상 가족 안 개인의 역할로 묶여있다. 사회는 안전과 돌봄의 사회화가 이뤄지지 않고 아웃소싱을 준다.  안전은 남성에게, 건강은 가정에게.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의 주인공은 안정적인 사람과의 결혼한 후 소회를 밝힌다. “합법적 관계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로구나. 내가 있는 자리에 비로소 안착한 것 같은 느낌은 아주 편안했다.” 그 편안함을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 시대의 젊은 여성들은 알고 있다. 그 선택이 생각보다 안전하고 아늑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돌봄 노동은 성별화 되었다. 우리나라 여성암 환자의 이혼 비율은 남성 환자에 비해 약 4배 높다.


안전하고 싶어서, 늙어도 ‘돌봄’ 받고 싶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임시적 해결책에 불과하다. 1인 가구는 관리가 필요한 취약 계층이 아니다. 1인 가구를 취약 계층으로 만드는 것은 정상・다인 가족 중심의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프면 바로 갈 수 있는 가까운 병원, 비용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돌봄 시스템,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는 친밀하고 느슨한 공동체다. 정상 가족은 계속해서 분열 중이다. 탈가족화∙탈젠더화 시대의 다양한 가정을 상상해본다.  어떤 가정이든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법적으로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단순히 사회적 반발심 때문에 비혼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읽었다. “비혼을 지탱하는 건 결혼 제도에 대한 반박의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지속해온 삶의 방향성이 결혼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수민, <비혼을 통해 본 결혼의 탈제도화와 문화적 영향력의 지속>, 가족과 문화(2017)” 깊이 공감했다. 결혼 제도와 빈약한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나와 잘 맞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완전한 고독 안에서 자유와 완성을 느낀다. 30년간 천천히 나를 관찰한 끝에 얻은 결론이다.




최근 내 노년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있다. 폴 살로펙의 프로젝트는 내가 꿈꾸는 은퇴 후 삶 그 자체다. 두 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 폴 살로펙은 2013년부터 7년간 에티오피아에서 남미 끝까지 걷는 '에덴을 떠나(Out of Eden)'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시간에 3마일의 속도로 하루의 20마일씩, 인류가 걸어온 길을 걸쳐 다시 걷는 대장정이다. 지금도 그는 천천히 전 세계를 걸으며, 취재 특파원 때와는 다른 느린 속도로 사람들의 이야기에 보폭을 맞춘다. 사적인 여행이 아니라, 빈곤, 기후변화, 이주민 갈등 등 지구의 다층적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발견하는 공적인 여행이다. 그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과 답은 영상과, 인터뷰, SNS의 형태로 전 세계인들과 연결된다. (그의 모든 여행은 웹사이트(http://www.outofedenwalk.com)에 기록되어 있다.) 그가 대장정을 시작한 나이는 쉰이었다.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영감을 준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지난겨울,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상해 임시정부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에 취재 기사로 동행한 적이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과 익산 이리남 초등학생들이 함께하는 역사 탐방 프로그램이었다. 그때 나는 권미숙 교장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리남 초등학교가 프로그램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교장 선생님이 보낸 기획서 덕분이었다고 한다. 원래 초등학생들은 모집 대상이 아니었는데도, 아이들의 역사 교육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준비하셨다고. 교장 선생님과 나는 2박 3일간 버스 옆자리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교장 선생님은 진정한 의미의 대안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지역 사회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는 분이었다. 곧 은퇴하는 그분의 나이는 환갑이다. 교장 선생님은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내게 큰 영감과 자극을 주는 멋진 어른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비전이 개인에게서 끝나지 않고 시대정신과 연결되어 있고, 세상에 전하고 싶은 구체적인 메시지가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능력과 용기,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 그들은 그간 인생을 통해 쌓은 경험과 자원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고,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데 거침없으며,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건강한 체력이 있었다. 나는 그런 어른들을 보며, 인간을 '가을의 무화과'에 비유한 니체의 문장을 떠올렸다. 노년이란 젊음과 체력을 잃어가는 상실의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성숙하고 완성에 다다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노년을 그려본다.


내가 예순이 되었을 때, 나는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경계를 넘나드는 시야를 갖추고 (열심히 일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꾸준히 공부하고)

내게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겸손하고)

세상의 사람들과 깊고 진한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질문을 던지고(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질문을 수집하며)

어려운 이야기도 어찌 됐든 과감히 이야기하고 (용기를 갖고)

내가 모은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글쓰기를 포함해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사랑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나는 매일 20마일을 걸으며 (등산과 러닝으로 기초 체력을 만들고)

5년이 넘는 긴 시간을 들여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 (돈을 모아야 한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기술을 기꺼이 활용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기술을 매번 시도하고)

젊은 세대와도 소통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2050년의 나는 나만의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갖춘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올해로 서른이다. 언제 벌써 서른이 됐지 싶으면서도, 두 번째 삶을 얻은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구체적인 은퇴 이후를 상상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데도 분명한 동력이 된다. 생존을 위한 막연한 건강이 아니라,  '세상을 여행하기 위한 체력'을 구체적으로 연상하는 식이다. '6개 국어'라고 하면 거창하고 허황되어 보이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의 회화 능력을 공부할 시간이 30년간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5년에 하나의 언어씩만 집중해도 될 것 같다.) 그렇게 당장 오늘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도 않고 긴 호흡으로 내 미래를 상상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어른이자 시민이 되는 것이다. 지금 잠깐 헤맨다고 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다. 그 길로 가는 방법은 무수히 많으며, 수정할 시간도 많다. 먼저 미래로 향한 멋진 어른들을 만나며 나는 더 구체적인 할머니가 될 것이다.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내어 커다란 원목 책상에 앉아 있는 머리가 희끗한 나를 상상한다. 공항에서 자주 노트를 펼치는, 여전히 알고 싶은 것이 잔뜩이라 홍조가 그대로인 키 큰 할머니도 상상한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나는 항상 혼자 글을 쓰고 있거나 걷고 있다.) 그러면 나는 아무래도 혼자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혼은 내가 꿈꾸는 삶을 위해 내가 선택한 삶의 형태다.


이 모든 계획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아빠의 죽음이라는 것이 삶의 역설이다. 타인의 죽음은 자신의 생을 선명하게 만든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강렬한 죽음 하나와 인상적인 삶 몇 개를 샘플처럼 나열하며 나는 내 미래를 이리저리 조합해본다. 아이같이 부푼 마음으로 나는 지금 두 번째 유년을 마주한다.






매거진 소개 ⎮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삶은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같지도, 내 삶은 <애도일기>를 쓴 롤랑 바르트 같지도 않았다. 이것은 애도의 일기가 아니다. 이것은 아빠가 죽은 후 진동하는 삶의 기록, 죽음과 삶에 대한 엇갈린 고찰, 남겨진 자가 삶을 처리하는 서툰 기록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적절한 애도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오길 바란다. 프롤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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