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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Dec 19. 2019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성가신 여름이 끝났다


죽음은 연습할  없다

-그해 여름의 문자메시지


아버지 위독하시대

아버지 운명하셧다

(맞춤법이 틀려도 그냥 넘어갔다)

영정사진 갖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와

아버지 주민등록 주소 좀 알려줘 빨리


엄마랑 통화했어

아버지 세례명 요한

천주교 식으로 장례 치르지 말래


안치료 20만

입관료 20만

음식값 기본 50만

상복대여비 2만

수의 38만

관 25만 

운구비 40만(기사 팁 포함)

화장비 10만

유골함 3만


꽃값은?

계산은 나중에 하자


아무도 원하지 않는 아버지의 피 묻은 틀니를, 

가져가려는 자식이 없어

무슨 전염병 만지듯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80이 되도록 젊은이처럼 단단하던, 

당신의 자랑이던 몸이 뜨거운 재가 되기까지

40분도 걸리지 않았다


상속포기 서류를 법원에 접수하고

하우스 와인을 한 잔 마신 뒤에

성가신 여름이 끝났다


― 최영미,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이미출판사, 2019)





성가신 여름이 끝났다.


10개월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당시 나는 여행의 여운에 빠져 여전히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역에서 가져온 낙관과 상상이 더운 열기에 섞였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느 날, 아빠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미래나 긍정적인 단어는 장례식 이후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느닷없는 현실의 출연이었다.


몇 달 전 포르투갈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아침의 피아노>를 읽었던 것이 생각났다. 철학자 김진영의 유고집인 <아침의 피아노>에는 그가 암으로 임종하기 직전까지 썼던 일기가 담겨있다. 그는 인간을 '가을의 무화과'에 비유했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 무르익는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순간이라고 불렀다” 죽음을 앞둔 철학자는 그의 문장처럼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달했다. 그는 이 거대한 고독의 시간에 자신의 삶과 죽음, 몸과 마음, 과거를 정직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나의 아빠는 '조용한 순간'을 갖지 못했다. 합병증 환자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업무 중에 사망한 아빠에게 삶을 고찰할 ‘조용한 순간’은 없었다. 죽음을 예상하고 준비할 기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아빠가 삶을 관조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었다. 사회 속에서 어떤 사람은 더 빨리, 더 아프게 죽는다. 어쩌면 삶을 고찰할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은 소수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후, 도서관에 가서 김진영이 번역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빌렸다. 바르트는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의 사망 다음날부터 약 2년간 일기를 썼다.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 정도로 바르트는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슬픔을 집요하게 기록했다. 그걸 읽으면서 나는 그의 애도에 공감하는 한편, 내가 이만큼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에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 시기 나의 감정은 슬픔보단 분노와 절박함에 가까웠다.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진동으로 강하게 흔들린 후였다. 그 여진으로 인해 내가 알던 모든 것은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씩 어긋났다. 아빠의 죽음은 시력 검사대에 턱을 대고 렌즈 구멍으로 초원 위의 집을 바라보는 것처럼 내 삶을 강제로 마주하게 했다. 그렇게 바라본 내 미래는 너무 아득하고 불확실해서 가슴이 조여왔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싶었다. 애도는 사치인 나날이었다.


어쩌면 죽음은 연습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죽고 싶은지 미리 상상할 수는 있다. 먼 발치에서 남의 인생과 책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 나는 수정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해야했다. 내겐 나만의 답이 필요했다. 언젠가 아프고 병들고 죽을 우리의 삶을 미리 고민하고 얘기하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오늘처럼 당황할 것이다. 돌봄과 가족, 죽음과 질병을 고찰하는 ‘조용한 순간’은 빠를수록 좋다. 나는 잘 무르익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


글쓰기는 남겨진 자가 여진을 감당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죽음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내가 적지 않으면 완전히 사라질 어떤 한 사람의 기억을 지구에 남기는 일, 지금 남은 자의 삶이 더 온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일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는 개인적인 일이지만 사회적인 일이기도 하다. 김진영은 병상의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사적인 일기를 올리기로 한 이유다.


망각할 수 없는 비밀은 고요히 혼자 간직하고, 망각하기 쉬운 것들을 여기에 기록한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적절한 애도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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