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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Dec 27. 2019

금산으로 가는 징검다리

아빠의 고향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던 그 날의 금산은 흐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풀숲을 헤쳐 올라갔다. 시야가 낮은 나에게는 흙탕물로 까맣게 물든 여자들의 치맛단이 잘 보였다. 젊은 사촌 오빠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줍고는 잡초들을 쳐내며 앞장섰다.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고요하던 산골짜기에 통곡 소리가 울려 퍼진 건 할머니의 관을 땅 속에 묻을 때였다. 장례지도사는 매장하기 전 관을 열어 염습한 할머니를 마주할 마지막 시간을 줬다. 엄마는 내 눈을 가리려 했지만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그렇게 할머니가 영영 끝이 보이지 않는 깊숙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아홉 살의 나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얼굴로 말했다. “슬픈데 눈물이 안 나요, 엄마.” 엄마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우는 눈으로 웃었다. 


이후 금산의 묘는 아빠의 몫이 되었다. 아빠는 2남 3녀의 막내아들이었다. 첫째 누나와 둘째 형은 지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두 누나는 서울과 문경에서 각자의 삶을 버티고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남자 자식은 제사와 벌초를 도맡게 되었다. 면허가 없는 아빠는 운전을 하는 젊은 조카와 어린 나를 데리고 매년 금산에 갔다. 벌초 후 소주를 마시며 벌건 얼굴로 “내가 죽으면 네가 여기 와서 할머니를 챙겨야 한다”라고 다그치는 아빠의 말과 술냄새가 싫었지만, 아주 먼 이야기 같아 대충 든든한 장녀인 척을 했다. 내가 교복을 입고 공부 핑계를 댈 무렵부터는 아빠 혼자 금산에 갔다. 그러고 보면 차도 없는 아빠가 그 산골짜기 묘지까지 어떻게 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빠에게서 나는 풀 비린내와 흙내만이 금산행을 증명할 뿐이었다.  
 

아빠는 금산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안동에 있는 외조부모님의 묫자리를 보고 오는 길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날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화장시켜줘. 느이 아빠는 금산에 묫자리 두 개를 사놨다는데. 멀기만 한 그곳에 묻힐 일이 뭐가 있니?” 부모의 부모가 묻힐 곳을 보는 것도, 내 부모의 장례 계획에 대해 듣는 것도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최대한 미루고 싶은 일이었지만, 미룬 숙제를 해치운 듯이 후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죽음을 제외하고 미래를 그릴 수는 없었다.


어떤 미래는 너무 빨리 찾아오기도 한다. 몇 달 전 아빠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게는 아빠의 예상 사망시각을 추측케 하는 CCTV만이 남았다. 아빠는 금산에 묻히지 못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평택 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장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문득 20년 전 금산이 떠올랐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슬퍼서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아빠가 마지막 숨이 쉴 때 오롯이 혼자였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하며 떠올리는 악습관이 생겼다.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 철저히 혼자였을 아빠를 상상할 때마다 조건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왔다.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도, 아빠와 친하지도 않았지만 뜻밖의 죽음이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죽음에 대한 글과 책만 찾아 읽었다.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는 이런 구절을 발견하기도 했다. “임종을 앞둔 사람은 삶을 정리하려는 욕구와 혼자 있으려는 욕망을 느낀다” 나는 아빠가 죽기 바로 전 금산에 다녀온 것을 떠올렸다. 집에는 벌초할 때 따온 산초 열매로 만든 장아찌가 새 것처럼 베란다에 있었다. 다 끝난 후에는 모든 것이 확실한 징후로 보이는 것일까. 우리에게만 갑작스럽고 아빠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거란 가정은 나를 괴롭혔다.


결국 죄책감이었다. 이제야 뜨거운 재가 된 아빠를 안아 보는 것이, 제대로 아빠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 이젠 들을 기회마저 사라진 것이, 앞으로 아빠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리란 걱정이, 금산에 아빠를 묻지 못한 것이, 이 모든 죄책감이 내게 남았다. 이 슬픔에 하나하나 울 수 없을 때, 울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을 때 나는 비로소 울지 않게 되었다. 


금산의 금이 쇠 금(金)인 줄 알았는데, 비단 금(錦) 자라고 한다. 금과 비단이 합쳐진, 오색이 빛나는 비단 같은 산이어서 금산이었다. 하지만 비단같이 아름다운 금산은 내 인생의 최고의 장소가 아니다. 다시 가고 싶은 곳도  아니다. 그래서 이렇게 적는다. 적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그 장소를 억지로라도 기억하기 위해 적는다. 물어볼 기회도 없이 끝나버린 한 사람의 우주가 아쉬워서 적는다. 내가 서툰 글로 징검다리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아빠와 금산을 기억할 방법이 사라질까 봐 이렇게 적는다. 언젠가 내가 아빠 대신 할머니의 묘에 갈 때는 이 징검다리를 밟고 가기를 바란다. 그때 마지막으로 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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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선생님의 <나를 위한 글쓰기 : 자기성찰과 재탄생> 수업을 들으며 썼던 글. 

그 주의 주제는 '잊을 수 없는 장소'였다.  



매거진 소개 ⎮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삶은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같지도, 내 삶은 <애도일기>를 쓴 롤랑 바르트 같지도 않았다. 이것은 애도의 일기가 아니다. 이것은 아빠가 죽은 후 진동하는 삶의 기록, 죽음과 삶에 대한 엇갈린 고찰, 남겨진 자가 삶을 처리하는 서툰 기록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적절한 애도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오길 바란다. 프롤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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