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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Dec 26. 2019

향초가 꺼지지 않도록

내게만 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미신을 믿지 않는다. 점, 굿, 사주팔자, 별자리, 타로, 관상, 풍수지리, 온갖 종류의 금기, 징크스, 로또 명당, 종교, 유사과학 등. 종교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은 멀리하는 나 자신에 대한 우스운 자의식도 있다. 그러나 그런 미신을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온다. 내가 아빠의 장례를 치르면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상주 자리에 앉아 조문객을 맞을 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빠져나간 후였다. 많은 사람이 오가고 많이 울고 많이 앉았다 일어난 하루였다. 하루의 끝에 필요한 건 수면이었지만 잠시도 허락되지 않았다. 밤새 향초에 촛불을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는 반드시 향초가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낮은 물론이고, 장례가 끝날 때까지 고인의 혼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불을 붙여줘야 했다. 개수는 홀수로 꽂는다. 한번 불을 붙이면 10분 정도 가니까, 한 시간에 여섯 번은 바꿔야 했다. 친척들은 내게 와서 얘기했다. OO야, 절대로 불이 꺼지게 하면 안 된다, 그건 안되는 거야. 그러면서도 OO야. 잠 좀 자둬, 고생했다,라고 말했다. 난 푹 쉬면서 절대로 불을 끄면 안됐다. ‘아니 그걸 어떻게 해요?’ 어쨌든 자면 안되는거였다. 나 대신 자야 할 사람들이 많았고, 거기서 나는 마지막으로 자야 하는 사람이었다. 


향초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내겐 대표적인 미신이었다. 치성을 드리면 아빠가 잘 떠나리라는 믿음은 제 맘 편하기 위한 뒤늦은 친절처럼 느껴졌다.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거나 몇 번의 제사를 치르는 것도 내게는 여성의 노동력을 볼모로 하는 구복 신앙에 불과했다. 아빠는 재가 될 거고 사후 세계는 없다. 영혼은 없고 있다 해도 고작 내가 향초 불을 옮기지 않아 꺼지는 정도의 혼령이라면 애초에 천국은 못 간다. 하지만 그걸 고모한테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날 나는 말 잘 듣고 효성 깊은 상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흉내라도 내려고 지키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죽은 아빠의 혼이 아니라 살아있는 친척에 대한 예의였다. 예의를 대신 부려준 건 권과 박이었지만. 


권이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었다. 칼정장을 입은 권은 내일 면접을 본다며 잠깐 내 얼굴을 보러 왔다고, 잠시 머물다 가겠다고 했다. 장례식장이 애매한 곳에 위치한 탓에 오는 데만 해도 족히 네 시간은 들여 간신히 왔을 텐데, 택시도 안 잡히고 버스도 끊긴 곳에서 어떻게 또 나가겠다는 건지. 나는 무척 별일인 일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권의 무던함을 좋아했는데 그날 역시도 그랬다. 가족들이 다 말린 끝에 권은 이 곳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내가 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날 나는 아빠에게 친구를 보여주는 것이 내심 좋았다. 아빠에게 술 한잔을 드린 권과 나는 향초 앞에 누웠다. 숨 막혀 죽을까 봐 분향소 문을 조금 열어두고 나는 상복을 이불 삼아 잠을 청했다. 권은 나 대신 뜬 눈으로 밤새 향초를 갈았다.


이튿날 박은 두 번에 걸쳐 찾아왔다. 낮에 처음 박이 조문을 왔을 때 친척들은 내게 물어봤다. “저 친구는 예술을 하니?” 머리가 노랗다 못해 하얗게 탈색된 박은 어르신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뮤지션인 박은 다시 서울에 올라가 공연을 하고 한밤중에 다시 내려왔다. 박의 손에는 대용량 투고백에 담긴 커피와 내 동생에게 몰래 물어보고 사온 초코 라테가 들려있었다. 간만에 먹는 따뜻한 브랜드 커피와 투고백에 큰 관심을 보인 고모는 박의 고향과 나와의 친밀도를 묻기 시작했다. 그 애 참 센스있다면서. 박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남에게 필요한 것을 잘 알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힘이 들었으리란 것도 안다. 놀랍지 않지만 나는 세상에 박을 싫어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날도 박은 나와 부의금을 세고, 봉투를 정리하고, 권이 누웠던 자리에 대신 누웠다. 다음날 발인제와 화장터에서 아빠를 태우고, 장지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박은 계속 곁에 있었다.


내가 삼일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애들이 대신 향초를 밝혀준 밤 덕분이었다. 웃긴 것은 걔네는 나처럼 미신을 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걔네는 사랑을 잘하고 사랑하는 법을 잘 알았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못해서 이렇게 건조한 인간이 된 것일까? 그래서 아빠를 위해 향초 몇 시간 붙이는 것 마저 별 이유를 다 붙여가며 싫증을 내는 그런 사람으로 겨우 자랐을까? 어쨌든 간신히 내가 그 시기를 지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걔네들 덕분이었다.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나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을 깨닫고 빚을 지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것은 무겁기보다는 고마운 부담이었다. 나도 언제나 기꺼운 마음으로 불을 붙여주겠다는. 



치성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그 애들과 친구인 것이 나의 가장 큰 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덕을 상을 치르고서야 한 템포 늦게 깨닫는 것은 내게만 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 소개 ⎮ 이것은 애도가 아니다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빠의 삶은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같지도, 내 삶은 <애도일기>를 쓴 롤랑 바르트 같지도 않았다. 이것은 애도의 일기가 아니다. 이것은 아빠가 죽은 후 진동하는 삶의 기록, 죽음과 삶에 대한 엇갈린 고찰, 남겨진 자가 삶을 처리하는 서툰 기록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적절한 애도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오길 바란다. 프롤로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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