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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Sep 13. 2018

여행지에서 편지를 보낸다는 것

서신형 인간


여행지에서 편지를 보낸다는 것


지금은 호스텔의 다이닝 룸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글을 쓰고있다. 새소리가 지저귀는 창문을 활짝 열고 거리의 소음을 들으며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답장을 쓴다. 가장 급한 회신은 좋아하는 분에게 보낼 편지였다. 나는 그걸 지난주에 받았지만 시간날 때 답장해야지 하며 계속 미뤄왔다. 그분은 메일로 나의 여행을 응원하며 신영복이 말한 ‘자유’에 대해서 말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 <담론> 중에서



 “삶이 무료해지고 내가 희미해질 때, 일상의 어떤 시도도 무력하게 느껴질 때 여행이 제게 탈출구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어쩌면 여행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을 더 찾아보려 노력해야 했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이미 떠나온 것이니, 말씀하신 것 처럼 자기 안의 이유를 갖고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분이 말씀해주신 것 처럼, 이 여행이 진심으로 자유로운 여행이기를 바란다.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편지는 언제 받을지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그저 우리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그 느낌 하나면 된다. 어쩌면 나는 일기를 쓰는 것에 있어선 지독한 인서타충이지만, 타인과 대화하는데 있어선 서신형 인간일지도 모른다. 


 정혜윤 작가의 <인생의 일요일들>은 그녀가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지인에게 일요일마다 쓴 편지를 묶은 책이다. 사실 편지라는 것은 1:1 글쓰기라 서로의 관계의 맥락을 잘 아는 경우에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에, 책에 대해 큰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부러웠던 것은 그렇게 연락할 사람이 있었다는 것.. 나의 일상과 사고를 주고받고 확장시킬 사람이 있다는 것.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그럼 먼저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 


미얀마, 양곤 (2018)


답장에 대하여

나의 책과 여행을 응원해주는 연락들이 오고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그것에 정말이지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답장하고 싶은데 때로는 그것이 부담이 된다. 내게 시간을 들여서 연락을 해준 사람에게 응당 그에 맞는 대답을 하고 싶은데, 고민하느라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그것은 나의 단점이기도 하다. 회사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세희 너는 영혼이 없이 말한다는 것이었다. 조급하게 빨리 대꾸하다보면 보통 영혼이 한참 없어지고는 한다. 나는 진짜 영혼을 담아서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데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빈곤한 단어 때문인건지, 성급한 마음 때문인건지. 어쨌든 답장이 바로 가지 않는다고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치열하게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윤령이는 인스타 할 시간은 있고 내 카톡 답장은 안하냐는 댓글을 달았다. 솔직히 찔려서 이러는 거 맞음. 변명하자면, 내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감상을 남기는 것과 타인에게 답장을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나에게 말을 거는 것보다 다른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나같은 사람은 타인과 대화하는 시간을 똑 떼어놓고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입사원 교육을 진행할때 ‘강점 진단’이라는 것을 했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나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디테일한 가이드를 제시해준 것이었다. 그중 <발상(ideation)>이라는 나의 강점의 가이드로 어떤 말이 있었냐면,


자료를 읽을 시간을 미리 계획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경험이 
당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므로 생각할 시간도 미리 계획하십시오.


<생각은 당신에게 에너지를 주므로 생각할 시간도 미리 계획하십시오> 아무때나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면 생각이 된다. 글을 쓰기로 마음을 굳이 먹어야 안쓰던 글이 써진다. 생각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답장할 시간도 때어두자. 이건 비즈니스적인게 아니라 나다운 방법이다. 


 한편 윤령이는 귀여운 돌직구를 잘던진다. 퇴사하기 전에도 엠체널로 이제 나 없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누구누구와 친하게 지내라고 했더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마 나는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랑만 친해질거야” 한껏 털을 세운 예민한 포메라니언같이 대꾸해서 캡쳐해두고 한동안 낄낄댔음.
 
 이렇게 늦은 답장에 대한 긴 변명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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