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와 여행
여행자의 삶의 무게, 30kg
내일은 바간에서 만달레이로 이동한다. 인레 호수에 가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그렇게 가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이동하는 것도 싫고, 한 곳에 짧게 있는 것도 싫고, 다시 또 다음 장소을 알아보고 준비해야하는 것도 싫고, 투어를 하기 위해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이동하는 것도 싫다. 조금 계획을 짜다가 확신이 들었다. “나는 인레 호수에 가고 싶지 않다.” 남들이 간다고 나도 갈 필요가 없다. 그냥 만달레이로 바로 가기로 한다. 만달레이에는 딱히 할게 없지만 치앙마이로 이동하는 공항이 있다. 그곳에서 계획없는 5일을 보내고 치앙마이로 넘어갈 것이다.
이렇게 바간에 온지 일주일만에 또 짐을 정리한다. 물건을 정리하는 주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일까? 사나흘 주기로 자주 옮겨다니는 경우에는 매번 캐리어를 정리할 필요가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한 곳에 오래 정착하는 경우에는 캐리어를 비우고 나의 방을 꾸밀 수 있다. 주 단위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그냥 정리하고 싶으면 정리를 한다. 장기여행자의 캐리어란 삶 그 자체다. 삶을 정리하는 주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일까.
30kg 캐리어가 부담이라 틈만 나면 짐을 덜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행을 하며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한달 전으로 돌아가 다시 짐을 싸더라도 내가 동남아에서 샌달을 절대 신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 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양곤에서 바간으로 이동할 때 샌들 두 개를 버리고 왔다.) 오늘도 캐리어에 있는 짐들을 하나씩 다 펼쳐두고 파우치를 열어보는데, 이젠 아무리 뒤져봐도 버릴 게 없다. 하나 하나 다 필요한 물건들이다. 손톱깎기 하나 버린다고 캐리어가 가벼워질리도 없다. 그런 손톱깍기 같은 것들이 수십개 쌓니 삶이 무거워진다. 나의 삶은 수많은 물건에 의존해왔다.
손톱깎기 하나 버린다고 캐리어가 가벼워질리도 없다.
그런 손톱깍기 같은 것들이 수십개 쌓니 삶이 무거워진다.
나의 삶은 수많은 물건에 의존해왔다.
캐리어에는 세 가지 종류의 물건이 있다. (1) 매일 사용하고, 없으면 안되는 것. 옷, 세면도구, 노트북, 충전기 등. (2) 매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이든 한달이든 사용하게되는 주기가 있어서 챙겨야하는 것들. 예를 들면 손톱깎기, 생리대, 면도기 등. (3) 또 하나는 매일 사용하라고 하면 하루 종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으면 1년 내내 손끝 하나 안댈 수 있는 것들. 대부분의 취미 생활 용품들. 드로잉북, 팔렛트, 붓, 수채화붓, 종이책, 우쿨렐레, 폴라로이드 등. 짐을 버릴 땐 항상 (2)번과 (3)번 사이에서 갈등한다. (2)번을 지금 당장 사용하지 않는다고 버리면 언젠가 다시 또 사게 될거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3)으로 눈을 돌리게 되지만, 이 물건들이야말로 내 정체성을 설명한다.
어쩌면 30kg는 내 삶의 무게다. 여기서 더 줄이려는 것 자체가 내 지나간 삶에 대한 외면일 수 있다. 이미 나는 하나의 집을 비우고 왔다. 더 이상 줄이려 하지말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더 잘 사용하자. 30키로그램의 캐리어를 가지고 이동할 때마다 부담인 줄 알았는데, 그냥 나는 이동하는게 부담인거다.
그럼 이동을 적게하면 된다. 무거운 캐리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것.
+)
아 사실 버릴거 있다. 책들이다. 이 책들은 빠르게 읽고 치앙마이 서점에 기증할 예정이다. (빨리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