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여행
일일집사가 되다
빠이에서 약 한달을 보내고, 정든 마니게스트하우스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 왔다. 빠이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숙소 사장님은 남편과 함께 1박으로 놀러가시기로 했다. 나는 그때 숙소에 있는 유일한 게스트였고, 하루 동안 숙소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살피며 숙소를 지키기로 했다.
설렜다. 고양이와 단 셋(나1 고영이2)만 보내는 빠이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니.. 하루종일 숙소 밖을 나가지 않고 우쿨렐레를 칠 준비도 완벽히 되어있었다. 고양이와 우쿨렐레, 빠이. 완벽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고양이를 돌보는 하루는 내가 상상한 하루와는 많이 달랐는데...
산책냥들의 구슬픈 울음소리
사장님과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한 가지였다. 이곳의 고양이, 소주&맥주는 산책냥들이다. 집에만 있는 고양이들이 아니라,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자유롭게 집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고양이들이다. 둘 중 서열이 좀 더 높은 맥주는 손님들이 오고가는 커피숍과 게스트하우스 옆집인 병원 등 앞마당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소주는 뒷마당의 자연을 벗삼아 닭들과 뛰놀고 도마뱀과 뛰논다.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인 냥들이다.
하지만 사장님이 없을 때도 자유롭게 풀어놔다가 잃어버리면 큰일이니, 내가 집을 보는 날은 원래 문을 닫는 시간보다 일찍 고양이들을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그러니까 오후 네시부터 다음날 낮까지, 고양이들은 꼼짝없이 집 안에만 있어야 했다. 나는 처음엔 "그냥 문닫고 안에 두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소맥이들은 닫힌 문을 보고 잠들기 전까지 가열차게 울어댔다. 나는 하루종일 거실에 앉아 우쿨렐레를 쳤는데, 고양이들이 얼마나 구슬프게 우는지 우쿨렐레 녹음에도 고양이 목소리가 녹음될 정도였다. 소맥이들이 야옹거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왔다 ….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장님이 주라고 한 간식 양보다 더 많이 몰래 나눠주고, 쥐돌이로 놀아도 줬지만,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고양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것, 그리고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맞다. 겨우 하루 돌본 것 맞다. 하루만에 이렇게 누군가에게 미안해한 날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 없었다... 나는 내 발 밑으로 고개를 부비며 문을 열어달라 조르는 소&맥이들 앞에서 한국어로 "미안해, 미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날 계획한 모든일은 되지 않았다. 얘네들이 우는데 내가 무슨 글을 쓰고 공부를 해…ㅜ.
언젠가 사장님과 술을 마시며 고양이 얘기를 한게 떠올랐다. 사장님은 남편이 나만큼 고양이를 챙기지 않는게 서운하다고 한 적이 있었다. 앞마당에 차도 많고,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오면 걱정이되는데 나만큼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는 고양이들에 대한 걱정어린 불만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아니 쉬부엉 우리 소맥이 왜 안챙기는데요…"
일일집사, 비출산을 다짐하다
그날의 경험은 사고의 이상한 방향으로 치닫았는데, 그건 바로 비출산에 대한 다짐이었다. 나는 고양이 하루 키우는 것도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데, 어떻게 아기를 키우느냐 말인가? 분명 하루 종일 마음 쓰느라, 그리고 내가 못해주는 것들에 미안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내 인생에 아기는 없을 거라는 확신..
내가 아기를 좋아하지 않을까봐도 걱정이지만, 너무 좋아할까봐도 걱정이다.
아기를 너무 사랑해서 내 삶이 피폐해질까봐 무섭다. 아기를 걱정하고 마음쓰느라 아무것도 못할까봐 무섭다. 평생 반려동물 한번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일일 집사의 경험이 더 크게 다가왔다. 고양이 두마리를 24시간 돌보는 것도 내게는 너무 큰 책임감을 요한다. 하물며 내 아기는 얼마나 신경쓰이고 마음쓰일까. 오늘도 빠이 한가운데서 비출산을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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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맥이 너희들은 너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