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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Feb 15. 2019

이토록 게으르고 예민한 답사

건축 답사가 좋은 이유

알바로 시자를 만나러

포르투갈 에보라 Évora


리스본에서 남동쪽으로 110km 떨어진 곳에 에보라Évora라는 도시가 있다. 나는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1970년대에 만든 퀸타 다 말라게이라 하우징을 보러 당일치기로 그 곳에 갔다. 당시 포르투갈은 독재정권이 붕괴하고 열악한 조건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통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사회적 화두였다. 저개발된 전원 지역이었던 에보라도 방대한 도시 계획의 대상이었으며, 가장 뛰어난 건축가인 알바로 시자가 이 곳을 설계를 맡았다. 저가의 건설비용을 맞춰야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획일화된 주택 단지이지만, 시자만의 모더니즘의 변주를 느낄 수 있는 이 곳에는 매년 전 세계의 건축가들과 학생들이 찾아온다. 시자 역시 한때 이곳에 거주하기 위해 귀향했다고 한다.


건축 답사를 하는 나의 보통의 루틴은 이러하다. 홀로 정색하고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사진찍고, 돌아와서 메모리카드에 있는 사진을 에어드랍으로 옮기고의 무한 반복이다. 순전히 알바로 시자를 위해 왕복 220km를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들고 귀찮은 일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똥씹은 표정으로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건축가 황철호의 말 때문이었다. 


답사와 여행은 첫 걸음이 중요하다.
떠나지 않는 자는 결국 미지의 세계로 가지 못한다.


건축 답사를 하는 것의 장점은, 즐겁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여행은 즐겁지 않을 때 우울해진다.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 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재미없다니? 우울하다니? 하지만 답사는 무엇인가. 답사는 탐구와 공부다. 공부는 원래 그렇게 즐겁지 않다. 그 점이 나를 강박에서 자유롭게 해준다. 그냥 읽어야 할 것을 읽고 가야할 곳을 가고,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다보면 즐거움에 대한 집착에서 어느새 벗어나게 된다. 그런 집중의 상태에서 사유하고 탐구하다 보면 언젠가 공부도 즐거워 질 때가 오겠지. 그런 기대로 즐겁지 않게 답사를 간다. 그래서 즐겁다.


황철호 건축가는 철저하게 준비한 후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라고 조언했다. 비록 나는 철저한 준비는 안했지만 에보라로 떠났다. 버스를 타는 두시간 동안 건물에 대해 공부하면 그만이니까.




에보라 인근으로 도착하자 버스 차창 밖으로 코르크 나무들이 보였다.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이 지방의 나무를 사용한다는 블로그 글을 읽은 보람이 있다. 에보라는 확실히 리스본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리고 퀸타 다 말라게이라 주택 단지 쪽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이 동네의 고요한 적막과 마주했다. 온통 하얗고 낮은 주택들이 자갈길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지만, 어쩐지 단 한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커튼이 쳐진 창문 안으로 나를 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곧 도착한 말라게이라 주택 단지는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점선면의 총체였다. 그곳의 모든 건물은 흰 면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리스본에서 본 오래된 건물의 아름다운 석조 디테일이나 푸른 아줄레주 타일 같은 것은 없다. 하얀 벽과 높낮이가 다른 주택들은 본인들이 만든 그림자들로 토요일 오후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곳은 너무 조용해서 개짖는 소리만 드문드문 들렸다. 가끔 할아버지들만이 나를 쳐다보며 지나갈 뿐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이 곳은 앨리스의 궁전이라기보단.. 그래, 미래인들이 만든 시골같다. 미래적인데, 무언가 노년을 앞둔 사람들의 적막한 커뮤니티같다는 느낌. 1970년대에 꿈꾼 모더니즘이 이런 것이었을까. 똑같은 하얀 건물에 적응될 때쯤에야 눈에 들어오는 가가호호의 개성을 슬며시 발견하며 계속해서 마을을 찍었다. (자세한 건축 후기는 추후 다른 매거진을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


에보라에 와서 좋았다. 하지만 ‘이 건물을 보러 여기까지 온 나’라는 자의식 역시 강하게 느꼈다. 여태까지 여행과는 다른 성실한 나의 모습에 내심 뿌듯함이 들면서, 그 뿌듯함만을 위해 여기까지 돈과 시간을 뿌렸다는 의구심 역시 머릿 속 한 켠에 남아 있었다.




이런 수고로운 여행은 답사도 답사지만 이동이 핵심이다. 샤워하는 동안 가장 많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버스나 열차를 타는 적적한 혼자만의 시간에 의외로 삶이 바뀌기도 한다. 물론 나는 이번 에보라로 이동하는 버스에선 온갖 자괴감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여행 중에 자괴감에 자주 빠지는 타입이다. 버스를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집에가서 누워있고만 싶었다. 낯설다는 감각은 언제나 나를 철저한 고독과 우울에 빠지게 한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빠질 때마다 나는 최악을 상상한다. 에보라에서 나는 현금이 부족하고 카드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곳에서 “카드가 안되면 어떡하지”, 혹은 “버스 티켓 못구해서 이 곳에 유배되면 어떡하지” 이런 상상을 계속 떠올리는 식이다.


이런 피곤함은 곧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왜 이 정도의 불편함도 감당하지 못할까? 낯설다는 감각을 받아들이고 편하게 즐기지 못할까?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낯섬을 이겨내고 이민도 오고 유학도 하는데. 나는 내 돈으로 편하게 여행하면서도 징징대는거야? 보통 때에는 이런 생각이 유치하다는 걸 알지만, 그 버스 안에서는 나를 짓누를 정도로 확장된다.



그런 나를 위로한 것은 페소아였다. 버스 안에서 읽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서 나를 위로하는 문장을 발견했다. “지금 이순간 느끼는 회의는 나를 짓누르지 않는다. 내 안에서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시간의 확장에 대한 갈망을 느낀다. 나는 무조건 나이고 싶다.”


그리고 읽은 문장.


기차는 속력을 멈추고,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é 역으로 도입한다.

나는 리스본에 도착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도 그렇게 결론없이 리스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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