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사진
그날도 아침 일찍 나와 골목을 걸었다.
어떤 나라든 전쟁 중이거나 우범지대가 아닌 한, 대도시든 작은 마을이든 골목을 걸어 다니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다. 그곳을 여행하는 이방인으로써, 온전히 허락되지 않은 사유지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느낌조차 설렘으로 다가온다. 스쳐 지나는 골목에서 왠지 거기에 딱 어울리는 풍경을 보거나 진면목을 느끼게 되는 날이면 그날의 반은 아무것도 안 한 채 흘려보내도 성공한 날처럼 느껴진달까.
크라쿠프의 Lewkowa라는 골목길 옆을 지나다가 두 건물을 잇는 전깃줄에 나이키운동화 한 켤레가 햇빛을 받으며 떡하니 걸려있는 걸 봤다.
왜 하필 운동화를 저기에 걸어둔 걸까.
저걸 다시 내리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 생각하니, 이번엔 저 운동화를 건 사람이 궁금해졌다. 왼쪽 건물에 사는 사람일지 오른쪽 건물에 사는 사람일지. 설마, 아예 다른 건물에 사는 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면서.
그렇게 운동화를 쳐다보고 있는데 청년 셋이 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사진엔 둘처럼 보이지만 셋이다. 다리 쪽을 잘 보면 셋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저 녀석들 중 한 명 건가? 싶었지만 그들은 카메라를 꺼내드는 날 쓱 한번 쳐다보더니 내 앞을 그냥 지나쳐 갔고 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이 사진을 찍고 나서도 꽤 한참은 운동화를 쳐다보고 있었던 거 같다.
다 말랐을까? 다 마른 거 같은데.. 왠지 창문으로 갈고리가 달린 기다란 막대가 나와 운동화를 들어 올릴 거 같은데.. 남자일까 여자일까?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어쩌지?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일까? 아냐 사진을 찍고 나서 웃어 보일까? 이러면서.
물론 내가 상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오전 난 큰 성공이라도 한 사람처럼 골목을 돌아다녔다.
이 사진을 보며 시선이 운동화로 가기 전 그들의 얼굴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게 좋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날의 좋았던 설렘을 좀 더 생생하게 떠올리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