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나는 번아웃을 꽤나 심하게 앓았다. 회사에 있으면 단전부터 올라오는 한숨에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고, 집에서 나설 때까지는 그래도 생글생글 웃던 내가 회사 출입구만 들어서면 바로 물 먹은 솜으로 변하기 쉽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가면을 쓴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척, 씩씩한 척, 이런 저런 괜찮은 척을 참 많이 했더랬다. 나중에 알게된 건 나도 내 감정을 쏟아내는게 무서웠다고 해야할까? 내 안에 차버리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수많은 울분들이 정말 입 밖으로 살짝만 뱉어내면 와르르 쏟아질 것 만 같았다. 그래서, 난 늘 괜찮은 척을 했다. 일을 하다가 너무 답답한 마음에 회사 폰부스에 가서 슬랙에 올릴 퇴사 공지글을 미리 작성해보기도 하고, 입사 축하 선물로 원티드에서 받은 일기장에 불만을 적어보기도 하고,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일시적일 뿐 나의 번아웃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정말 다행인 건 지금은 그 때의 내 모습을 회상할 수 있을만큼 조금 더 단단해지게 되었다. 혹여나 직장에서 과거의 나처럼 번아웃을 앓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내가 도움을 받았던 팁들을 소소하게 공유해볼까한다.
마음이 답답하다면 그 일이 크든 작든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이 사람 저 사람 보이는 사람마다 말을 하기 보다는 내가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나는 내가 힘들 때 그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타인들이 알아줄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기대는 나의 욕심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말하기 전까지 그 심각성은 아무도 알수없다. 알아주길 바라기 보단 내가 먼저 손을 잡아달라고 요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말을 한다고 상황이 달라져?'라고 할 수 있지만, 나의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툭 털어놓기만 해도 훨씬 더 가벼워진 기분을 얻을 수 있다.
퇴근하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회사 메신저의 알람을 끄는 것이다. 나는 이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루에 8시간 이상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의 경우 월~금요일까지 줄기차게 이어지는 루틴된 삶이기 때문에 스스로 완급조절을 잘 하는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히 내 몸에 에너지를 비축해놓을 필요가 있고 난 그걸 위해서 퇴근 후엔 오로지 회사원이 아닌 본연의 나 자신으로 마인드 세팅을 바꾼다. 난 더이상 직장인도 아니고 지금은 회사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고. 머릿 속에 회사에 대한 걱정으로 늘 가득하다면, 하루에 1시간이라도 회사에 대한 생각을 안하는 것을 노력해보는 것도 좋다.
혹여나 위에 언급한 온/오프가 잘되지 않는 분들이라면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몰입이라는 것은 이 일을 할 때 다른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그런 것이다. 여러가지를 시도해본 결과 나는 운동과 요리가 큰 도움이 됐다. 운동의 경우에는 러닝머신으로 인터벌을 하거나 천국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같이 고강도 유산소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겁나 힘들기 때문에'
힘들면 다른 생각을 할래야 할수가 없다. 그리고 운동을 통해 체력도 키울 수 있으니 아직 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직장인이라면 꼭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 (혹여나 헬스장을 끊어놓고 잘 가지 못한다면 큰 비용을 들여서 PT를 결제해보시길. 200만원을 한번에 긁으니 없던 운동 습관도 절로 얻게된 나의 실제 경험담이다.)
내년엔 집을 이사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나는 나름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다. 그 덕분에 어느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참 많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간간히 원데이 클래스를 듣는다던지, 시즌이 바뀌었을 때 옷을 사러 간다던지, 자주는 아니지만 주기적으로 갔던 해외여행이라던지. 어느순간 돌이켜보니 나는 그저 회사에 다니는 돈 버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돈을 대단히 벌지도 못하니 스스로 흐르는 모래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득 내가 돈을 모으는 것도 결국 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가? 난 보이지 않는 미래의 안정감에 왜 이렇게 집중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축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답답한 마음에 지금 당장 바다가 보고 싶다면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떠나고, 사고 싶었던 옷들도 사고, 쿠팡에서 잔뜩 식료품을 주문해서 냉장고도 꽉 채워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엄청난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굳이 아끼지 않기로 했다. 소소하게 내 욕구를 채워주다보니 어느순간 행복은 별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 속에 생각이 많아질 땐 그 생각들을 어딘가에 털어놓는 것이 좋다. 앞서 말했던 누군가에게 말로 털어놓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말은 휘발되지만 글은 내가 원할 때 언제 어디서든 다시 볼 수 있다. 그래서, SNS가 됐건 다이어리가 됐건 나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남겨두면 지난날의 내 모습과 나의 생각들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최근에 글을 쓰는게 도움이 된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몇 번있었다. 회사에서 답답한 마음을 다이어리에 쏟아내는데 한 달 뒤에 그 글을 보니 그 때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내 모습이 좀 더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매 번 힘든 일들이 계속 있었지만 난 그래도 꿋꿋하게 이겨내 왔었구나. 이 때는 팀 내의 새로운 팀원을 잘 챙겨주기 위해서 내 스스로 고민했었구나. 참 좋은 동료다. 너 참 멋있다!
그 당시에는 불만을 털어놓는 행위로 보였던 나의 글들을 다시금 돌아보니 나는 그저 잘하고 싶었구나. 더 잘하기 위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애썼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일기장에 남겨두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때의 기억보단 힘들었던 감정 자체로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쓰기 덕에 나는 지금 이 모든 것도 결국 다 지나갈 것이고, 나에게 추억이자 성장의 양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혹여나 어디다가 글을 써야할지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브런치도 좋다.
야금 야금 달리는 좋아요와 댓글이
실제로 큰 힘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