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보기 전엔 절대 모르는 스타트업의 현실
혹시 드라마 '스타트업'을 보신 분들이 계신가요?
2020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홈페이지에서는 '한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청춘들의 시작(START)과 성장(UP)을 그린 드라마'라고 소개합니다.
스타트업이 방영된 3년 전, 20대 중반의 나이었던 저는 이 드라마를 보고 '스타트업'이라는 워딩에 제대로 꽂히고야 말았습니다. 이름부터 멋들어지는
‘스타트업'
나이 많은 아저씨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닌 젊은 또래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야근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웃음이 새어 나오더라구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역시 드라마와 다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여나 몇 년 전의 저처럼 스타트업에 꽂혀 취준을 하고 계시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저의 실제 경험담이 소소한 도움이 되길..
(*아래 내용들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며, 회사의 상황에 따라 상이할 수 있습니다.)
아직 업무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뿐만 아니라, 마케터로는 사실상 첫 회사라 '사수'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컸다. 하지만, 놀랍게도 회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나와 연차가 비슷하거나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 말인 즉슨
‘나의 고민 = 동료의 고민'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나오는 답은 '그래서 우리 언제 퇴사하지?' 일 수 밖에 없고, 팀원 간의 의기투합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하기엔 나의 부족한 경험이 큰 걸림돌이 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근속한지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외부 컨설턴트 분이 투입되어서 여러가지 자문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함께 일하는 제대로 된 시니어가 없다는 건 여러모로 답답한 상황이다.
혹여나 나를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니 '이것 저것 내가 주도적으로 시도해보면 되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나 역시도 그랬기에..)
업무에 따라서 도전적인 자세가 중요한 경우도 있지만,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보고를 하는 등 연차가 쌓여야지 좀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아직 실수 투성이인 주니어를 옆에서 봐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1명이라도 존재한다면 회사에서 성장하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삽질의 끝에 손에 쥐어진게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함과 작은 돌멩이라도 얻어가는 기분은 천지차이다.
현 회사에서 1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근무하면서 가장 달라진 내 모습은 '차가운 심장'을 가지게 됐다는 것..? 어제까지 있었던 동료가 다음 날 출근하니 사라져있고, 하루에 3명 이상의 동료에게 퇴사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1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퇴사하거나 1년을 갓 넘기고 바로 퇴사하는 등 퇴사..퇴사..그리고 퇴사 말도 안되게 퇴사하는 동료를 많이 마주하게 되었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겠지만, 스타트업에서의 근속은 특히나 어렵다. 무엇보다 안정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스타트업은 냅다 뛰쳐 나오고 싶은 지옥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주변에 퇴사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하나 같이 입을 모아 했던 말씀은
'여기는 다닐 곳이 아닌 것 같아요'
'굳이 여기서 버틸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와 같이 심적으로 많이 지쳤다는 걸 단 한마디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의지하고, 친했던 동료들이 떠나가는게 한없이 슬프게 느껴졌지만 어느새 퇴사하는 이들을 마주하면 '행복하세요! 고생했어요!'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슬랙에 비활성화된 흑백 사진들을 보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뭐..어쩌겠어. 남아있는 사람은 이것조차도 적응해야 하는 것을..
처음에 회사에 입사했을 땐, 인수인계를 받은대로 일을 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또 찾아보면 되고. 나중에 회사에 적응한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노션에 있는 대부분의 업무 기록들이
오랫동안 지속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잠깐' 기획했다가 공중분해된 일
-'잠깐' 회고를 했다가 이번 달만 하고 그만한 일
-'잠깐' 팀을 이런 형태로 바꿨다가 다시 돌려놓은 일
-'잠깐' 복지를 위해 진행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끝난 일
그리고, 더 씁쓸했던 건 업무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고민과 생각이 있을 때, 노션을 문득 찾아보니 이전
담당자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아..이건 몇 년 째 해결이 되지 않는 이슈구나..그리고 그게 흘러 흘러 나한테까지 왔구나)
사실 엄청난 복지를 기대하고 회사에 입사한 건 아니지만, 스타트업에서 복지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채용 공고에 나와 있는 흔한 복지라면 아래와 같다.
-간식 제공
-점심 식대 제공
-택시비 지원
-저녁 식대 지원
-교육비 지원
-애견 동반 출근 가능
-스톡옵션
-상여금
놀랍게도 우리 회사의 채용공고에도 이 많은 복지가 해당이 되는데 현실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제공되는 간식'은 맛있는 건 늘 빠르게 사라지고, 아무도 찾지 않는 슴슴한 과자만 계속 자리를 차지 하고 있으며, '식대 지원'은 전체가 아닌 일부만 (금액도 정말 적다..7만원 미만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교육비 지원'이 가능 하지만, 강의를 듣고 동료들 앞에서 강의 내용을 기반으로 내가 강의를 다시 하거나 혹은 강의를 듣는 이유에 대해 대표님을 반드시 설득시켜야 한다. ‘애견 동반 출근'이 가능하지만,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스톡옵션' 제공이 되지만, 계약서 내용을 보면 사실상 노예 계약이며, '상여금'은...없다..
(예시: 00월00일로부터 2/3년 간 근무 시, 스톡옵션 지급. 중도 퇴사할 경우? 안녕히 가세요~)
입사하기 전 회사의 나쁘지 않은 복지 혜택에 입사 날이 너무나 기다려졌지만, 공고에 기재된 혜택들이사실은 다 '말' 뿐이었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닫게 되었다.
소소한 팁이라면
저녁 식대 제공 = 야근이 잦은 곳일 확률이 높으며
스타트업의 스톡옵션은 공기와 같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공기= 있는데 보이지 않음. 만지고 싶지만 만질 수 없음)
스타트업에서 쌩 신입을 뽑는 이유는 크게 2가지라고 추측한다.
첫번째.
일단 열.심.히하니까 (=능동적임)
두번째.
자기 고집이 없으니까
(=시키는대로 '넵 알겠습니다!'를 잘함)
그 덕인지 신입에게는 조금 더 유하게 넘어가는 상황이 많다.
'신입이니까 아직 모를 수 있지'
'00씨는 아직 저연차니까'
(그렇다고 신입= ’실수해도 되는 사람‘ 아님)
하지만, 경력직에게는 그 잣대가 달라진다. 회사 내에서 퇴사한 경력직 분이 본인이 대표님에게 전해들은 말 중 가장 상처였던 말이 '경력직인 것 같지가 않다.'라고 하셨다.
(경력직 다운게 과연 뭘까..?)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를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매출을 전년 대비 눈에 띄게 성장시키고
신사업이지만 빠르게 안정화를 만드는 것..?
물론 아직 주니어인 내가 경력직의 고충이나 책임에 대해 논하는 것엔 모순점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다가올 시니어의 삶이 있기에 경력직들의 돌연퇴사는 왠지 모르게 더욱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