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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Oct 30. 2023

퇴사 후 혼자 떠난 제주 여행

내 인생 최고의 숙소를 만나다

10월 말 새로운 회사의 입사를 앞두고, 나는 퇴사 후혼자 제주로 떠났다. 4박 5일의 너무 짧지도 길지도않은 일정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당분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계획없이 훌쩍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년 전에 일본 도쿄로 여행을 떠났던 이후로 처음 비행기를 타는터라 어찌나 설레고 긴장되던지. 항공권과 숙소만 예약하고 떠난터라 '혼자 가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밀려왔는데비행기 창 밖의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수많은 걱정들이 눈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일단 해보자!'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서 성산에 위치한 숙소로 향했다. 차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포함 2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그런데도 피곤한 것 보단 버스를 야무지게 타고, 얼마가 걸리든 숙소로 잘 가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매연 냄새 없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창밖의 바람을 맞으며, 그저 설레는 마음만 안고 숙소로 향했다.



비행기 창 밖 풍경 (왼), 숙소로 향하는 버스 안 (오)



나는 여행지에서 대단히 숙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꺼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고 싶었달까? 동적이고 액티브한 활동을 좋아하지만, 사실 정적인 시간을 누구보다 즐기는 사람이기에, 조용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숙소를 찾던 중 '취다선 리조트(https://www.chuidasun.com/)'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취다선 리조트는 티 클래스, 아침 명상, 아로마 테라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제주에서 온전히 비우고, 또 좋은 에너지로 채우고 싶었던 나에게 더할나위없이 좋은 선택지가 될거라고 생각해서 항공권보다 먼저 예약한 숙소랄까. 2박에 30만원이 넘는 거금을 지불했지만 결론적으로 제주 여행 중 내가 가장 잘 한 선택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만큼 좋은 시간이었다.



취다선 리조트 건물 외관


아침 7시에 진행되는 명상에 참여하기 위해 6시에 부지런히 일어나 창 밖의 일출을 마주했다. 평소에 출근할 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게 곤욕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자니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풍경에 넋이나간 정신을 잡고 양치를 마치고 명상하는 곳을 찾았다. 본격적으로 명상에 들어가기앞서, 따뜻하게 우린 차를 한 잔씩 나눠주셨고, 명상에 대한 짧은 이야기와 함께 모두 눈을 감고 몰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명상을 하는 이유가 나 자신과 조금 더 깊게 만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나와 만난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함께 가만히내 안의 파동을 잠재워보기로 했다. 머릿 속에 잡생각이 떠오르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다시 이 순간에 집중하면 된다고 하셨다. 1시간 가까이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있자니 다리가 저려왔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명상이라는 걸 했다는 사실 만으로 뿌듯해지는 하루였다.



일출 사진(왼), 명상하는 공간(오)



명상이 끝나고는 곧장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오조미야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무료로 제공되는 조식이라큰 기대없이 방문했지만, 결론적으로 제 돈주고 사먹어도 아깝지 않았을만큼 음식은 참 따뜻하고 맛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면 오전 회의 중에 당 떨어질까봐 자리에서 급히 고구마와 떡을 입에 쑤셔넣곤 했는데 명상 후에 조용하게 음미하는 아침밥은 여러모로 그맛이 달랐다. 어쩌면 이 아침밥이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다시 회사로 복귀하면 이런 시간을 원해도 누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조미야에서 먹은 아침들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저녁엔 티 클래스에도 참여했다. 평소에 찬 물을 즐겨 마시지만 아침엔 김이 펄펄나는 뜨거운 물을 마시는 게 습관인 나는 한번쯤 다도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침 투숙객을 대상으로 사전에 신청하면 바로 참여할 수 있는 클래스가 있어서 저녁 식사 후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요가원에서 맡았던 은은한 향 냄새부터, 다양한 다도 용품까지. 이것저것 물건들을 구경하던 중, 오늘 티 클래스를 진행해주시는 선생님의 안내와 함께 한방으로 들어갔다. 4가지의 차 선택지 중에 고를 수 있는데 나는 우빈이라는 볶은 녹차를 골랐다. 차의 이름치고는 낯설게 느껴지는 우빈은 '따뜻한 위로가필요한 순간에 마시면 좋은 차'라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왜 이 차를 골랐는지 물어봐 주셨고, 잠깐의 대화 후에 차를 우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찻잔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미리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것부터 찻 잎에 뜨거운 물을 다시 붓고, 1분 30초를 기다려 우려내고 거름망을 이용해 내가 마실 따뜻한 차 한 잔을 완성하는 것까지. 머그컵에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냅다 마셨던 것과 달리 제대로 된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시간과 공이 필요했다.


첫 입은 편하게 마셔보고, 두번째는 입에 머금고 그 맛을 느껴보라고 하셔서 뜨끈한 차에서 풍겨져 나오는 찻잎의 은은하고 묵직한 향과 맛을 음미해보았다.


'이게 바로 다도구나'


수 많은 설명없이 다도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온 몸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차를 우리는 과정과 한 잔의 차를 음미하는 시간동안 내 안의 잡념이 사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클래스가 끝나고 방에 돌아와 네이버로 다도 세트를 얼마나 검색했던지. 앞으로 집에 손님이 오면, 음료나 맥주 대신 차를 같이 마시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싶었다.


2박 3일동안 숙소에 머물면서 나에게 꼭 필요한 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헬스장에 러닝하러 가는 것도 아닌, 퇴근 후 마라샹궈를 먹는 것도 아닌, 동료들과 회사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아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잠깐 머문 시간동안의 여운은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어느새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에 잠에들기 전에 10분 정도 짧게나마 명상을 해보고, 속이 답답할 땐 탄산 음료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을 들이키고, 가끔씩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을 주는 시간을 가끔씩이라도 가져야 겠다.


매일이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듯이 말이다.



취다선 리조트 다도 공간
내가 처음으로 우린 차

⬇️직장인을 위한 서울 현지인 가이드⬇️

https://www.instagram.com/hyunji.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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