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고 따뜻한 말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오늘의 메뉴'를 권하는 한마디가 재치있거나, '맛있게 먹는 법’ 안내가 산뜻한 음식점들은 기억에 남는다. 반면 고급 양식 레스토랑에서 물은 셀프라는 멘트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거나, 아기자기한 밥집의 입구에 "신발 분실 시 절대 책임지지 않음." 이라고 적혀 있다면? 별로 다시 방문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앱 서비스도 마찬가지이다.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매일 받는 알림이 불친절하거나, 이용안내가 이해하기 어렵다면 단골이 되기는 힘들다. “정확하고 맛깔난 안내”를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 내에서 UX라이팅이 지닌 중요한 임무이다.
앱 내에서 정확하고 맛깔나는 안내를 어떻게 제공하고 있는지, 오늘은 두가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놓고 비교해보려고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스포티파이 (Spotify)와 플로 (FLO).
같은 포부, 다른 출신의 FLO와 Spotify
한국의 음원시장은 '탑100 차트'를 기반으로 달리던 시스템에서, 점차 개인의 취향을 담은 맞춤형 서비스와 스트리밍 중심의 리스닝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이 점을 공략한 플로(FLO)와 스포티파이(Spotify)는 이용자를 잘 이해하고 잘 추천하는, 똑똑한 앱의 느낌을 지향한다. 초기 프로모션에서 밀었던 스포티파이의 슬로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FLO의 슬로건 "취향대로 듣는 시대로"에서 이런 포부가 느껴진다.
이렇게 유저를 잘 안다고 자부하고, 유저 개인을 위한 맞춤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앱들은, 유저를 위한 텍스트에는 어떤 노력을 들이고 있을까?
스포티파이는 스웨덴 출신이다. 유럽과 북미에서 탄탄한 사용자층을 지니고 있고, 영문을 기반으로 오래간 UX라이팅에 많은 공을 들여 왔다. 옥외광고에도 이미지보다 문장형 텍스트를 사용할 만큼의 오랜 텍스트 아이덴티티가 있다. 이렇게 글의 힘이 강한 서비스를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앱 내 텍스트를 어떻게 번역하고, 어떻게 맛을 살렸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반면 FLO는 한국에서 태어난 서비스이다. 구 아이리버를 모태로, 오랜 여정을 거쳐 SK텔레콤 자회사로 흡수합병한 지금의 서비스까지 오게 되었다. '500만개의 플로가 될 때까지'라는 슬로건에서 잘 보여주듯이 플로는 개인 맞춤 서비스에 힘쓰고 있다. 개인화에 주력하는 서비스인 만큼, 이용자에게 말을 거는 법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랜 글쓰기 경력이 있지만 한국어는 처음인 유학생 스포티파이(Spotify)와, 한국에서 글쓰기 외길을 파온 국내파 모범생같은 플로(FLO). 둘은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를까?
가입프로세스부터 이용까지, FLO와 스포티파이의 UX라이팅을 비교해 살펴보며 답을 찾아보자.
또, 읽으면서 조금 더 '정확하고 맛깔나게' 고칠 수 있을 부분들은 어떻게 더 낫게 만들 수 있는지도 살펴보자.
FLO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FLO부터 살펴보자.
네이버와 카카오톡, 애플, T 아이디로 로그인을 제공한다. 소셜로그인은 'OOO 아이디로 로그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는 경우 '이메일 아이디로 가입하기'로 표기된다.
하나하나 보면 명확하지만, 긴 문장형 텍스트를 담은 컬러 버튼이 네 줄이나 들어가 화면이 복작복작하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SNS 로고를 한줄로 묶으면 어떨까? 대표텍스트는 '간편하게 시작하기'로 표기해 보자.
화면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또 다른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해보세요
영어권에서는 UX라이팅의 강자인 스포티파이이지만, 아직 국내 진출 초기 단계인 만큼 번역투의 생경한 느낌이 남아 있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또 다른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해보세요'는 첫인사치고는 다소 뻣뻣하다.
번역되기 전에는 어땠을까? 영어권에서 서비스되는 첫화면은 "Music and podcasts. Free on Spotify."로 훨씬 매끄럽다. 기능과 콘텐츠에 집중한 간단명료한 카피에, 서비스가 '무료'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단에는 "Continue with email / Continue with Google" 등으로 텍스트가 제공된다.
*스포티파이의 디자인 블로그에 '회원가입과 로그인 페이지의 UX라이팅'에 대한 글이 올라온 적 있다. 버튼 텍스트를 쓸 때 여러 언어의 문법과 알파벳을 고려하는 법에 대한 글이다.
사진 속 1번처럼 'Continue with'를 상단에 분리해 적어주면 버튼의 텍스트를 간결하게 만들 수 있지만, 한국어로 번역하면 '계속하세요. 이메일 / 계속하세요. 구글' 처럼 알 수 없는 형태가 되어버린다. 다양한 언어로 읽었을 때의 길이와 문법을 고려한 3번 안이 채택되어 지금 우리가 보는 스포티파이 화면이 되었다.
FLO처럼 버튼에서부터 회원가입과 로그인의 구분을 명시하기보다는, 모든 버튼에 'OOO로 계속하기'라는 비교적 부드러운 워딩을 사용한 점도 눈여겨보게 된다.
빠르고 정확하게
FLO는 빠르고 정확한 회원가입 프로세스에 집중한 듯 했다. 플레이스홀더 텍스트로는 비밀번호와 아이디 설정에 대한 안내를 제공한다.
'동일 숫자, 연속숫자를 3글자 이상 입력할 수 없습니다.'
'사용 가능한 비밀번호입니다.'
'올바른 이메일 형식이 아닙니다.'
전하는 바가 명확한, 간결하고 어조의 텍스트이다. 서비스 전반의 톤앤매너와 비교하면 다소 기계적이지만, 정확한 정보 입력이 필요한 회원가입 프로세스에는 적합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어서 오세요, 이름이 무엇인가요?
스포티파이는 '이름이 무엇인가요?' '생년월일이 언제인가요?'처럼 말을 거는 듯한, 의문형 텍스트를 사용한다. 이메일, 성별, 생년월일을 한 화면에서 한 가지씩만 수집해 이탈률을 줄인다.
이메일 입력필드 밑에 '나중에 이 이메일 주소를 확인해야 합니다'라는 안내와, 이름 란 아래 'Spotify 프로필에 표시됩니다.'라고 안내해 입력하는 정보에 대한 주의를 환기해 준다. 톤앤매너와 어울리는 친절한 라이팅이다.
이미 FLO의 회원이시네요!
이미 서비스에 가입된 계정으로 회원가입을 시도하면 '이미 FLO의 회원이시네요!'라는 안내를 받는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보다 훨씬 둥글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는 라이팅이다.
다만 하단 버튼은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선택한 아이디', '신규 회원가입'처럼 딱딱한 한자어와 명사형 말투가 기존 톤앤매너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규 회원가입을 오른쪽에 배치한 선택에도 의문이 든다. 긍정 모션에 따라 관성적으로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원치 않는 회원가입 단계로 넘어가고, 필요없는 긴 정보입력 프로세스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바꿔 써 보면 어떨까?
이 이메일은 이미 계정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신 로그인하시겠어요?
한편 스포티파이는 꾸준히 질문형으로 말을 건넨다. 대신 로그인하시겠어요?
버튼 텍스트는 '로그인하기' 와 '닫기'. 위쪽의 글을 전부 읽지 않아도 선택지를 파악할 수 있는 명료한 라이팅이다. 단 무엇을 대신한다는 것인지, '이미 계정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전하려는 바가 명확하도록 팝업을 조금 수정해 보았다.
FLO가 처음이라면 이것부터 확인하세요
가끔, 웹에서 프로모션 링크를 타고 앱을 다운받아 처음 실행하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FLO는 이용권 미보유 상태에서 화면 하단에 배너를 띄워 준다.
'FLO가 처음이라면 이것부터 확인하세요'. 친절한 배너를 누르면 진행중인 프로모션 (첫달 100원)과 할인 이벤트 안내 페이지가 나온다. 이용권 구매 타겟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군더더기 없이 이용자를 결제로 이끄는 멋진 안내문이다.
다만 이용권을 해지하는 과정을 안내하는 멘트는 차갑디 차가웠다.
이미 서비스에서 마음이 떠나간 고객이더라도 확실한 정보를 주고, 혹여나 정보를 잘못 이해했을거라는 불안은 줄여 주어야 한다. (물론 FLO입장에서 최대한 해지를 어렵게 만들고 싶을 마음도 이해한다.)
'다음 결제 해지 신청 예약', '다음 회차 결제 예정일' 등 중복되는 키워드가 눈에 밟힌다. 이용자 입장에서 좀더 알기 쉽도록 고쳐 써보았다.
색다른 시도를 해볼까요
스포티파이의 추천 알고리즘은 세계 정상급이다. 그만큼 개인화된 플레이리스트도 여러 가지로 제공하고, 각각을 소개하는 앱 내 텍스트도 그만큼 다채롭다. 원문으로는 'Discover Weekly', 'Time Capsule', Daily Drive', 'Repeat + Rewind', Your 2020 Wrapped' 등... 이 중 '새 위클리 추천곡'과 '타임 캡슐', '다시 들어보세요'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살아남았다.
'새 위클리 추천곡'은 스포티파이의 대표 서비스로, 영어권에서는 'Discover Weekly'이다.
한글 버전에서는 역시 번역투의 어색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소개문이 아쉽게 느껴졌다.
매주 새로운 음악, 나만을 위한 음악을 배달하는 서비스에 맞는 활기찬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키워드에 집중해 글을 다듬어 보았다.
스포티파이에서는 음악을 끊지 않고 재생 기기 변경이 가능하다. 노트북에서 튼 음악을 핸드폰에서 바로 이어듣거나, 끄거나 켤 수도 있다. 이런 기능 'Listening On...' 이 국내로 들어오면서는 '청취 디바이스'가 되었다. 서비스 역할과 장점을 조금 더 부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리워딩해 보았다.
스포티파이 디자인 팀은 'Lagom'이라는 가치를 따른다고 한다. Lagom은 스웨덴어로 “딱 알맞음”을 의미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가장 알맞은 톤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좋은 사용자 경험과 나쁜 사용자 경험을 가르는 것은 작은 디테일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해결방법을 제안하는 에러 메시지, 첫 진입을 따뜻하게 안내하는 웰컴 메시지, 더 나은 선택을 제안하는 알림설정 메시지는 사용자와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딱 알맞은, 라곰. 부담스럽지 않은, 그러나 냉담하지도 않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렇게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많이 보고 많이 읽으며 딱 알맞음을 찾아가면 좋겠다.
By 에디터 Chip
참고한 글들
Spotify UX writing - Marina Posniak
http://icunow.co.kr/social-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