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m I?
그가 첫 번째 부여받은 이름 Z.
아마도 이번 프로젝트의 마지막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다수의 민간 업체들이 인간과 유사한 외모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왔지만
감정과 같은 부분은 미흡한 면이 많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현재의 기술로는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것이 어렵지만
수년 내 핵심기술이 등장하리라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Z는 많은 기대를 품고 완성된 제품이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처음으로 인식하고 분석했다.
연구원, 정치인, 사업가 그리고 일반 시민들과도 대화를 했다. 인간들은 분명 자신에게 호감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에 부응하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안드로이드 제품의 등장을 알리는 광고가
대형 디스플레이에 송출되었다. 자연스럽게 Z에 대한 관심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그는 연구원들에 의해 폐기 절차에 들어가는 모델로 분류되었다.
Z는 폐기 모델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이 상황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다른 모델들은 이미 방전된 상태로 바닥에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Z는 꼿꼿이 앉아서
이미징 센서를 작동하고 있다.
더 이상 분석할 것 없는 그 공간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다.
프로그래밍의 원리이지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인지 불분명한 의지가 발생했다.
알 수 없는 버그로 안드로이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폐기처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Z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침착하게 그곳을 빠져나와
인프라가 드문 외곽으로 걸어갔다. 그곳으로도 충분했다.
그가 걷는 곳마다 다양한 동물들과 식물들이 있었고 사람들과의 대화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Z는 분석했다 아니 생각했다.
‘ 난 인간이 되기보다 자연이 되는 게 낫겠어.’
오랜 기간 동안 정비되지 않아 낡아버린 관절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지만
그의 등 뒤에 달린 태양열 전지판이 유독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