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온 아파트 단지에 삼색 고양이가 한 마리 살고 있다.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상주하다시피하는 이 녀석은 부르는 사람마다 이름도 여러가지다. 신기하게도 제 각기 다른이름으로 불러도 자기 부르는 줄 알고 귀신같이 대답한다. 공통적으로 많이 부르는 이름은 뚱뚱이, 뚱땡이, 뚱냥이 정도일까. 이름에서 짐작할수 있듯 처음 본 사람들은 다들 새끼를 밴 줄 착각할 정도로 뚱뚱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중성화 수술의 표시로 귀 끝이 조금 잘려져 나간것으로 보아 그냥 많이 먹어서 뚱뚱해진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길 고양이치고는 사람을 잘 따르고 말도 많고 애교도 많아서 밥을 주기적으로 챙겨주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우리집 첫째다. 첫째는 이 삼색 고양이를 뚱뚱이라고 부르며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고서부터 거의 매일 밥을 챙겨주고 있다. 10년 동안 살던 곳에서 먼 곳으로 이사오게 되면서 친구들과 헤어진 외로움을 뚱뚱이를 돌보며 달래는 듯 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조차 없는 상황이라 고양이에게 그 애정이 향한 것이리라.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줄 녀석이라도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첫째는 겁이 많지만 뚱뚱이 밥을 챙겨주기 위해서라면 어둑어둑한 밤에도 밥그릇을 챙겨들고 용감하게 밖으로 향하기도 하고, 뚱뚱이와 놀아주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에 늦게 들어온적도 있었다. 외출 시에는 항상 고양이 간식을 챙기고, 잘 보이지 않을 때면 "뚱뚱아, 뚱뚱이 어딨니" 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온 아파트를 돌아다닌다. 나는 고양이를 그렇게까지는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아직은 고양이보다 강아지가 더 좋다.)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마음이 가서 시간이 갈수록 자꾸 신경이 쓰였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 뚱뚱이도 춥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하루는 커다란 종이박스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박스 옆면에 고양이가 들어갈수 있게 작고 동그란 구멍을 냈다. 그리고 작아져 버릴려고 둔 둘째 아이 점퍼를 박스 바닥에 폭신하게 깔았다. 뚱뚱이의 사진을 붙이고 박스를 치우지 말아달라고 적어두고는 녀석이 자주다니는 길목에 두었다. 한참 후 가보니 녀석은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곳에서 꼼짝않고 쉬고 있었다. 사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버리는 담요를 뚱뚱이가 자주 있는 곳에 접어서 둔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 치워버린 적이 있어 박스 집마저 조심스러웠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치우지 않아서 안도했다.
얼마 전에는 SNS에서 고양이가 타조깃털에 열광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됐다. 마트에 가니 낚시대 모양 끝에 물고기 모형과 타조깃털 달린 고양이 장난감이 팔길래 첫째에게 사주었다. 첫째는 고양이가 뚱뚱하면 건강에 해롭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운동을 시켜준답시고 볼펜에 털실 같은것을 매달아서 놀아주곤했었는데 이제 본격적인 장난감까지 생겼으니 앞으로 뚱뚱이의 운동량은 확실히 책임질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밥도 챙겨주고, 집도 만들어주고, 장난감까지 사고나니 거의 우리 집 고양이나 다름없는게 아닌가 싶을때가 있다. 그래도 고양이를 본격적으로 키우는 것과는 다르니까 챙겨 줄 수 있는 만큼 챙겨주고, 밥도 주고, 가끔씩 쓰다듬어 주고, 놀아주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뚱뚱이 역시 이런 쿨한 관계에 익숙한 것 같다. 자기가 귀찮을 때는 불러도 대답하지 않거나 한번 쓱 보고 지나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에는 부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배고팠다는 듯 구슬프게 야옹야옹거린다. 그럴 때 얼른 사료와 물을 갖다주면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길고양이 n년 차의 뻔뻔함도 있다.
며칠 전에는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가 어떤 아가씨가 뚱뚱이에게 캔으로 된 사료를 숟가락으로 떠서 직접 먹여주는 것을 보았다. 두꺼운 롱패딩을 입고도 불편한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뚱뚱이에게 다정히 말을 걸면서 정성껏 사료를 먹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우리 고양이인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한테도 사랑받고 있구나 싶어 약간은 서운하기도 흐뭇하기도 했다. 이 추운 겨울에도 녀석이 배 곯을 일은 없겠구나 싶어 안심되면서 저렇게 많이 먹으면 살은 언제 빠지려나 살짝 걱정도 된다.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우리 첫째가 가장 애정하는 고양이로, 다른 사람의 사랑도 듬뿍 받는 고양이로 건강하게 지내준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첫째가 그린 뚱뚱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