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즐겁게 노는 법

by apricot

얼마 전 대만 로맨스 드라마를 보았다. 남자 주인공은 역대급으로 속 터지고, 여자 주인공은 매일 울고 어찌 보면 한심한 드라마였지만 남은 것은 딱 한 가지다. 둘이서 함께 하는 농구가 재미있어 보인다는 것.


드라마에서 남녀 커플이 농구 내기를 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둘의 키 차이가 엄청났다. 160센티도 되어 보이지 않는 여배우가 자기보다 한 뼘 이상 커 보이는 남배우와 농구를 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선했다. 이긴 사람의 소원 들어주기라는 다소 식상한 내용이었지만 그 순간을 즐기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정말 신나 보였다.


농구라니.. 그것은 키 큰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키가 작아도 농구를 즐길 수 있나 싶어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도 키 157cm의 여자 프로 농구 선수가 있었다.


학창 시절 둔한 운동신경 탓에 다른 체육 실기는 죄다 C만 받았지만 조금 큰 키 덕에 농구 실기 시험만큼은 B를 받았던 내가 아닌가. 남편은 스스로 공과는 친하지 않다고 했다. 구기종목에 약해서 야구, 축구, 농구에는 잼병이라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어차피 피차일반, 키 차이도 많이 나지 않고 둘 다 초보인데 해 볼만한 게임이 될 듯했다.


드라마에서 같이 농구하는 장면을 보았다고 그걸 남편과 해봐야지 하고 마음먹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선뜻 농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지난 주말 동안 함께 운동했던 시간들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며칠 전 둘째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서 미니 민턴 대회를 연다고 해서 집에서 연습도 할 겸 미니 민턴을 샀다. 배드민턴과 비슷한 미니 민턴은 라켓이 배드민턴보다 훨씬 가벼워서 애들이 배우기에 적합했다.


토요일 미니 민턴을 가지고 가까운 해변으로 갔다. 둘째가 연습하기를 기대했는데 정작 아이는 스카이콩콩에 푹 빠졌다. 첫째는 모래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고 놀면서 미니 민턴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기껏 가져왔는데 아깝기도 해서 남편과 재미 삼아해 보기로 했다. 때마침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적당한 날씨였다. 애들용이니 당연히 시시할 것이라 생각했던 미니 민턴은 배드민턴과 비슷하면서도 쉽고 재미있었다. 아마도 둘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라 그랬겠지만 말이다.


정신없이 날아오는 셔틀콕에 한번 정신이 팔리니 주위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이 때로 돌아간 것처럼 한바탕 즐기고 다음에는 배드민턴을 같이 쳐보기로 약속했다.


일요일,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그 날은 바람이 불어 미니 민턴 대신 찍찍이 캐치볼을 가져갔다. 15분 남짓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집 근처 하천변에 있는 작은 공원은 예상대로 한산했다.


공원에 도착한 아이들은 각자 벌레도 잡고 자전거도 탔다. 전날 미니 민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우리는 이번엔 캐치볼을 했다. 팔이 떨어져라 있는 힘껏 공을 던지니 평일 내내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갑자기 무리한 운동은 이튿날 온몸에 근육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날아오던 공이 찍찍이에 착 하고 달라붙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마치 메이저리그 선수가 된 것처럼 폼을 잡으며 공을 던져 보기도 하고 높은 공을 받으려고 풀쩍 점프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캐치볼은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흥미진진했다. 원래 운동신경이 둔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편이지만 이 날 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학교에 다닐 때는 체육시간마다 비가 오기를 기도할 정도로 운동을 싫어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그때는 억지로 하는 운동이 싫었고, 마음만큼 잘하지도 못했고, 못하는 내 모습이 그저 부끄러웠다.


지금은 잘 되면 잘 되는대로, 안되면 안 되는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즐겁다. 어린이용 찍찍이 캐치볼이든, 배드민턴도 아닌 미니 민턴이든 상관없다. 허둥지둥 공을 쫒는 둔한 몸짓이 우스꽝스럽더라도 어떻게든 날아오는 공이나 셔틀콕을 눈으로 좇게 된다. 머릿속으로는 이 느린 몸뚱이를 어떻게 움직여야 저걸 받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다음 날 몸 구석구석 쑤실 거라는 걱정도, 코로나에 대한 걱정도,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 잊힌다.


때로는 거대한 쇼핑몰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예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던 주말 오후가 그립다. 코로나 이전 도심에 살던 것이 엊그제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팬데믹 상황과 새롭게 시작한 지방 소도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가능한 한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게 정신건강에도 신체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날씨가 좋을 땐 어떻게든 아이들과 밖으로 나가 야외활동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둘째는 얼마 전부터 스케이드 보드를 사달라고 조르고 있다. 나도 전부터 관심이 있던 터라 아이 선물을 핑계 삼아 스케이드 보드도 한번 타보려 한다. 아마도 뒤뚱거리는 몸짓이 남들 보기엔 꼴 사나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난 그 순간 그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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