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

by apricot

도서관에서 '마흔에 관하여' 라는 책을 빌렸다. 이제 몇년 있으면 그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된다.

남편과 시내에 나가서 같이 커플 하와이안 셔츠를 샀다.남편은 산 즉시 갈아입기를 원했고, 둘이 같이 피팅룸에 들어가 갈아입었다. 걸캅스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라미란인지 이성경인지 헷갈렸지만 어쨌든 헐렁해서 편하고 나쁘지 않았다. 오랜 숙원이었던 하와이안 셔츠를 드디어 사게 된 남편은 아주 흡족해했다. 이제까지 남편이 골랐었던 하와이안 셔츠 중에서는 무늬가 그나마 봐줄만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집에서 입는 잠옷도 하와이안 무늬라서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 잠옷으로 갈아입었는데도 갈아입은 것 같지 않은것 빼고는 그럭저럭 괜찮다. 남편과의 외출 외에 평소에는 별로 많이 입을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 부부의 커플 아이템이 추가된 것에 만족한다.

둘이 하와이안 셔츠를 맞춰 입고 오락실에 가서 펌프를 신나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락실 직원이 다가와 피켓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밤 10시 이후에는 신분증 확인 필수' 라고 적혀있었는데 도대체 어쩌라는건가 싶었다. 지갑도 신분증도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비비탄으로 쏘는 슈팅 게임을 좋아한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가끔 잘 될 때는 최고 점수를 받을때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1300점을 넘겨서 S등급을 받았다. 사실 기기에 문제가 생겨 점수판 두개가 넘어가지는 않고 득점만 되는 바람에 운이 좋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얼마 전 '가시나들' 이라는 프로를 보았다. '가장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들' 이라는 부제의 이 프로그램은 시골에 사는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주인공인 보기 드문 예능 프로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교를 못다니고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은 60대부터 8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75살 먹은 할머니가 73살 먹은 할머니보고 몇 살이냐 물으면서 "아유 참 좋을 때다" 라고 말했던 거였다. 73세가 좋은 나이였다니... 생각해보면 박막례 할머니도 70대 나이에 유튜브를 통해 유명해졌다. 구글 회장도 만나고 얼마전에는 영국 BBC에도 나왔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매스컴에서만 보기 힘들 뿐, 이제는 전세계적인 스타된 박막례 할머니는 "남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어" 라고 명언을 남겼다.

나는 만약 사고나 병으로 빨리 죽지만 않는다면 반평생 넘게 시간이 남아있다. 뭐 늦으면 늦었다고도 할수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시작할수 있는 나이다. 1시간 넘게 뛸수 있는 튼튼한 다리와 체력도 있고, 한글도 알고, 영어도 조금 알고, 중국어도 아주 조금 안다. 평생동안 하고 싶은 일들이 있고, 내가 지겨워서 나가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할 수 있다. 나이 따위 30대로 접어들면서 제대로 세지 않고 살았지만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남의 눈치보느라 망설이지 않겠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면서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까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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