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자아에 대한 설명은 불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불교에서 설명하는 모든 것이 사실 외부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두 내부 마음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우리가 외부 세계라는 '객관적 세계가 있다' 라는 망상을 만들어 낸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불교경전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이야기 합니다. 외부의 객관적 세계 등 모든것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불교에서는 '나'라고 부르는 '자아'를 '오온'이 합쳐진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오온은 '색수상행식'을 말하는 것으로 즉 몸, 느낌, 생각, 의지/의도, 마음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해석에 오류를 범하기 쉬운게 '색' 즉 '몸'이라는 것이 물질적인 사람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만들어내는 형상을 이야기 합니다.
즉 오온은 모두 마음이 만들어내는 자아라는 관념입니다.
서양철학의 대표적 인물인 칸트의 자아에 대한 개념과 불교에서 말하는 자아의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제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내용에 오류가 있을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칸트는 자아에 대해서 '선험적 자아'라는 개념으로 이야기 합니다.
'선험적 자아'란 우리가 경험하는 자아가 그 경험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 주체를 말합니다.
우리 내면에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하는 주체가 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자아'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붓다는 칸트가 말한 자아개념에 대해서 부정하고, 그릇된 인식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붓다는 자아가 실제 하는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성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12입처의 작용으로 자아가 형성된다고 설명하는데, 12입처란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을 이야기 합니다.
보는 작용이 보는 대상을 만나서 형상을 만들어 내고,
듣는 작용이 듣는 대상을 만나서 소리를 만들어 내고,
냄새 맡는 작용이 대상을 만나서 향기를 만들어 내고,
맛을 느끼는 작용이 대상을 만나서 맛을 만들어 내고,
촉각을 느끼는 작용이 대상을 만나서 촉감을 만들어 내고,
마음이 대상을 만나서 분별의식을 만들어 내고,
이러한 12입처의 작용을 통해서(상호 작용을 통해서, 상호 관계성에 의해서)
오온(색수상행식) 즉 어떤 특정한 형상과 느낌, 생각, 의지, 의식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자아'라고 부른다고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예를들면 우리 내면에 무언가가 있어서 눈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인식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보는 작용을 통해서 그 대상을 만나서 상호 관계성에 의해서 특정 형상의 인식이 만들어 진다는 이야기 입니다.)
보시다시피 붓다는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 자아'가 아니라,
고정되지 않고 상호 관계성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자아라고 이야기 하고, 그래서 '연기적 자아'라고도 이야기 하고 '무아'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또는, 자성이 없다고 '무자성'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붓다와 칸트가 말하는 자아는 완전히 틀립니다.
그럼 현대과학에서는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양자역학에서는 상호 관계성에 의해서 모든 존재가 드러난다고 합니다. 상호 작용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붓다 말씀 그대로 입니다.
2500년전에 붓다의 인식에 경의를 표할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보냅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