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며 느낀 마음을 글로 남겨봅니다.
사실 언제부터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음 한쪽에는 늘 흙을 가까이 두고 싶다는 바람이 자리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직장 동료가 “텃밭 한 번 해볼래?” 하고 묻길래, 별 생각 없이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한마디가 시작이 되어 지금 이렇게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말부부로 타지에서 지내다 보니 작은 소일거리에 늘 목말라 있었고, TV에서 보던 ‘자연인’의 삶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또 맨발로 흙을 딛고, 풀밭에 앉아 바람을 느끼는 어싱(Earthing)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요.
어싱은 단순히 흙을 밟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다시 자연의 리듬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라고 합니다. 전기 장비가 땅에 접지를 해서 안전을 얻듯, 우리 역시 땅을 가까이하는 순간, 마음과 의식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 주민센터에서 주말농장 신청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덜컥 신청을 했고, 노포동에 있는 작은 텃밭 세 고랑을 배정받았습니다. ‘노포동’이라는 지명은 ‘늙을 노(老), 밭 포(圃)’에서 온 말이라 합니다. 오래된 밭, 오래도록 사람들이 농사짓던 자리라는 뜻이지요. 이름을 듣는 순간, 왠지 마음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처음에는 농기구 가게에서 호미와 물조리개를 사는 일조차 설레었습니다. 밭에 가서 잡풀을 뽑아내고, 드러난 황토빛 흙을 바라보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청양고추, 오이, 대파, 고구마, 상추, 부추를 심으며 어린 시절 부모님이 농사짓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고추 모종을 심을 때는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남의 밭에 갓 심은 고추를 죄다 뽑아버려 아버지께 호되게 혼났던 일. 어린 나이에 큰 충격이었는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그 기억이 부끄럽지만, 동시에 웃음이 나오는 추억이 되어 있네요.
사실 텃밭을 시작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책에서 얻은 영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 을 읽으며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에 대한 동경이 깊어졌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농사법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물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세운 원칙 가운데 제가 가장 마음에 남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루의 절반은 먹고 사는 일을 위해, 나머지 절반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쓴다. 한 해의 양식이 마련되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가능한 한 손으로 일한다. 먹고 남는 것은 필요한 이웃과 나눈다.”
그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제 작은 텃밭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다시 가다듬는 연습처럼 느껴집니다.
저녁이 되어 밭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가볍습니다. 땅에 발을 붙이고 흙을 만진 날은 늘 꿀잠을 자게 되지요. 아마 이것이 어싱의 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