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은 그 자체로 존재하려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에 가깝습니다.
여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림을 비워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형상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백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으며, 다만 드러나게 할 뿐입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삶과 대립하는 어떤 실체라기보다,
삶이 얼마나 생생한지 알려주는 경계선에 가깝습니다.
그 경계가 있기에 우리는 지금의 숨결을 느낍니다.
두려움 역시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사랑을 알아차리게 하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듯,
두려움은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말없이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실재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갑니다.
그 결과, 지금 여기에 이미 놓여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스쳐 지나갑니다.
상대성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가리키는 방향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