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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테마와 카르마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by 하늘담

인류의 의식이 많이 성장 하였고, 이제는 그 의식에 걸맞는 생각을 해야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로 부터 내려온 개념중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카르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카르마는 원래 붓다가 말씀 하신 것이 아니고 인도철학 고유의 믿음 입니다.

때로는 인도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지배계급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천민계급이 저항을 하지 않게, 원래 부터 스스로 지은죄가 있기 때문에 천민으로 태어났다고 믿게하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카르마가 허구의 개념은 아닙니다.

카르마는 현실에 실제 작용을하고 그 힘은 강력합니다.

카르마를 우리는 흔히들 자업자득, 인과의 의미로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많이 잘못된 이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수많은 생들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 말, 생각은 카르마, 업이 되어 남습니다.

그중에서 이번 생에 특히 특정 어떤 부분이 카르마로 작용하여 동작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절대 인과응보로 벌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카르마의 작용은 내 의식이 근원으로 부터 멀어진 부분을 바로 잡기위한, 의식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해당 생의 내가 배워야 할 삶의 테마입니다.

생과 생 사이에 스스로 계획한 것입니다.

카르마를 인과응보로 받아 들이면

우리는 끝없이 업을 짓고, 업장 소멸시키는 과정의 반복일 것입니다.

그래서 카르마를 인과응보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카르마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믿음은 영원히 윤회의 굴레에 묶이게 합니다.

카르마는 인과응보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의 성장을 위해서 균형을 맞추어 가기 위한 스스로 계획한 도구입니다.


이번 생의 주제는 이미 선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의 방식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번 생에서 겪을 삶의 큰 주제, 즉, 존재의 테마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그것은 흔히 ‘카르마’라고도 불리며,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의식의 균형을 향한 깊은 여정입니다.

그러나 그 테마를 어떻게 경험할 것인지는 완전히 우리의 자유입니다. 같은 주제를 부정적인 방식으로도, 긍정적인 방식으로도 체험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은 매 순간, 우리의 의식과 자유의지 안에 놓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삶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이번 생에서는 같은 고통을 겪는 방식으로 그 에너지를 균형잡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로, 타인의 삶을 돕거나 치유하는 역할을 통해서도 동일한 영적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겪느냐’가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자각하느냐’입니다.

삶은 마치 하나의 정교한 무대와 같고, 우리는 배우이자 연출자입니다. 대략적인 대본은 미리 쓰여 있을 수 있지만, 어떻게 연기할지는 언제나 우리의 몫입니다. 이 메커니즘을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는 삶의 고비에서 자신에게 더 깊은 책임감과 자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아마도 이미 자신의 삶에 흐르는 어떤 테마를 어렴풋이 느끼고 계실 것입니다. 그 주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오직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긍정적 경험으로 풀어갈지, 부정적 경험으로 풀어갈지는 오롯이 지금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택은 결국, 존재의 진화와 의식의 확장을 향해 나아가는 또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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