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새끼들, 정복산
친정아버지는 작은 과천아파트를 사서 막 결혼한 막내딸에게 주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막내딸의 시아버지는 과천아파트 계약자를 찾아가 집을 비싸게 팔았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계약을 파기시키고 거기에 위자료 300만 원까지 받아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아들 이름의 아파트를 계약해서 아들부부를 분가시켰다.
이유는 며느리가 결혼했으면 남편 이름으로 집을 사야지 왜 친정아버지 이름으로 집을 사냐는 거였다.
듣도 보도 못한 어이없는 일이었다.
30년도 넘은 이야기다.
이 일은 오래도록 막내딸의 가슴속에 응어리로, 그녀의 시어머니 가슴속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었다.
시어머니는 김제에서 가난한 집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복을 산처럼 쌓으라고 복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집안이 가난해서 8살 무렵 다리를 많이 다쳤는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그 후엔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그녀는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다.
타고난 힘은 장사여서 안 해본 일이 없다.
바닷가가 가까워 광주리에 생선을 가득 담아 이고 먼 곳까지 가서 팔고 오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나이가 차자 그녀는 동네서 가장 잘 산다는 장씨네로 시집을 가서 딸을 낳았다.
장 씨는 전처에게서 이미 여러 자식을 두고 있었다.
얼마 후 그녀는 딸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장씨집을 나왔다.
서울로 올라온 시어머니는 놀기 좋아하고 화투 좋아하던 실향민 시아버지를 만나 결혼해서 아들 둘, 딸 한 명을 낳았다.
어느 날 큰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누나가 나타났다.
충격이었다.
시아버지가 흰 구두 신고 오토바이 타고 놀러 다닐 때 시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전당포, 여관, 슈퍼..
시어머니는 장사 수완이 좋아서 하는 일마다 돈을 쓸어 모았다.
큰 딸에게 옷가게도 내주었다.
번 돈을 커다란 보자기에 둘둘 말아 아랫배에 차고 고향에 내려가 친정 형제들에게 방앗간을 마련해 주고, 배를 사서 어업권을 갖게 해 주고, 조카들의 학비도 대주었다.
그렇게 번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큰아들 결혼 무렵에는, 주위 사기꾼들 얘기만 무성했고 사는 집만 덜렁 남아 있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후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에미야,
큰 시누 부부가 사촌 세무사를 찾아갔대."
"네~, 왜요?"
"이 집을 내 이름으로 돌리려고."
"아~, 이제 어머님 집이에요."
"그래도 되냐?"
시어머니는 자신이 못 배워 잘 모르는 일이 있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일은 큰며느리에게 물었다.
시아버지 이름의 집은 시어머니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어머니는 홀로 살고 있던 집을 큰며느리에게 주겠다고 하셨다.
"에미야, 이 집 너한테 줄게."
온갖 사기꾼들과 돈 달라는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동안 어떤 자식의 말도 듣지 않던 분이었다.
시어머니의 표정에는 그전에도 가끔씩 내비친 예전 과천아파트에 대한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분명했던 건 하늘 같은 큰아들을 며느리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반만 주세요."
형제들은 시어머니집의 반이 큰아들 명의로 바뀌었지만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수년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에게 큰아들은 그런 의미였다.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고부터 차츰 징징이 큰 딸과 막무가내 작은아들의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
쓰나미 자식들의 돈 달라는 다그침이 지나가면 시어머니의 망상은 심해졌다.
"에미야, 내가 전에 우리 큰 아들 반 준거 너무 잘한 거야."
"너만 알고 있어. 니 큰 시누는 내 딸이 아니야."
돌아가신 후 안 일이지만 큰 딸은 시어머니가 장씨네로 친권을 포기한 거라는 뜻이었다.
자식들의 원망과 욕설이 난무했다.
"어머니가 원래 이 집 나한테 준다고 한 거였어."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내 돈을 꿔갔어."
"형수 대단한 사람이야.
반을 미리 빼돌리고."
"미친 늙은이,
무덤을 파서 다 씹어먹어도 시원치가 않아."
돌아가신 시아버지까지 소환됐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부터 상속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의심하고, 경계하고, 눈치 보고, 따돌리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 후쯤 돼서야 상속은 마무리되었다.
많은 것을 잃은 큰 아들은 허망해하고,
믿도 끝도 없는 작은 아들은 원통해하고,
눈물바다 큰 딸은 억울해하고,
미국 작은 딸은 외톨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