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학교, 가장 큰 세상

느리게 자라는 아이들, 사랑이

by 바비정원

차 한 대씩 간신히 엇갈려 지나는 비포장 산길 위로, 다리가 끊겨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갈 수 있었던 계곡 아래로, 이삿짐 차는 비틀비틀 덜컹덜컹 이삿짐을 옮겼다.

오후 늦게서야 도착한 이삿짐 차는 서둘러 짐을 부려놓고는 부리나케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갔다.

아빠가 갓 지어 채 마르지도 않은 통나무 흙집이 덩그러니 우리를 맞이했다.

서울 아파트에서만 살던 사랑이는 그저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2002년 9월 어느 비 오는 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백일이 갓 지난 늦둥이 동생과 함께 초등학교 4학년 사랑이는 강원도 인제로 이사를 갔다.

다니던 정든 학교를 떠나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서운했지만, 속 깊은 사랑이의 의사 표현은 고작 왜 자기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이사를 결정했냐는 한마디였다.

사랑이의 의견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랑이가 전학 온 분교는 전교생이 13명이었는데, 부부 교사가 아들 한 명을 데리고 와 계셨다.

계곡 건너 사는 세 쌍둥이 첫째, 둘째, 셋째와 대리구비에서 아빠와 단 둘이 사는 친구가 같은 4학년 모두였다.

바람부리 사는 남매, 이장댁 남매, 등산로 입구 사는 남매, 설피산장 자매.

13명의 분교생들은 사이좋은 오누이들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놀았다.

계곡에서 열목어 고기 잡기, 산에 오르기, 야생화 꽃 이름 알아맞히기, 산나물 곰취 캐기, 마을 대보름 행사 축제에서 쥐불놀이 하기.

때론 도시 아이들처럼 컴퓨터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도 불렀다.

포클레인 기사가 장래 희망이었던 아이들이다.

분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느라 사랑이는 인제를 떠나야 했다.


한 달간 서울서 바쁘게 지내더니, 8월은 좀 쉬려는지 사랑이가 강원도에 왔다.

대학생이 된 사랑이가 강원도에 오면 분교 동창생 5명은 모두 당연한 만남을 갖는다.

학기 중에는 춘천과 예산, 영월에 있는 세 쌍둥이도 방학이 되면 강원도에 와서 집 일을 돕는다.

군대 간 대리구비 승리는 집에서 현리로 출퇴근하는 상근이라서 5명의 만남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

네팔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방학을 강원도에서 보내기 위해 온 바람부리 얼이는 며칠째 아예 세 쌍둥이네서 숙식을 하고 있다.

다섯 아이들이 분교에 다닐 때 선생님 외동아들이었던 건모도 합류했다.


집수리를 돕는 쌍둥이들의 일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려 아이들은 모두 큰 다리 밑 계곡에서 만난다.

튜브 타다 빠지고, 일부러 빠뜨리고, 물속으로 헤엄쳐 다니고, 쉬고 있는 친구 물속으로 집어던지고, 게임하다 걸려서 다시 빠지고.

먼저 온 피서객들은 아이들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아 흐뭇해하며 자리를 비켜준다.

아이들 말로는 그들이 자리를 비켜준 게 아니라 자기들이 계곡을 점령했단다.

텃세를 부렸나 보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친 아이들은 다시 쌍둥이네서 모인다.

같이 라면 끓여 먹고, 떠들고, 게임하면서 그들만의 오붓한 저녁시간을 보낸다.

밤새 젊은 그들만의 이야기 꽃을 피워야 하니 약간의 음주도 곁들여진다.

서울 가서도 사랑이는 단톡방에서 분교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겠지.

자연이 선물한 착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지키는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부럽다, 청춘!

작가의 이전글사주풀이 카타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