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킵고잉

남편의 '와이프들', 성시련

by 바비정원

그녀의 프사는 2016년 2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예수상 앞에서 시작되었다.

검은 선글라스에 핑크빛 나시티를 입은 그녀가 두 팔 벌려 활짝 웃고 있다.


그 무렵 경혜였던 그녀는 시련으로 개명을 했다.


시련의 남편은 매일 믹스커피 두 개에 설탕 두 스푼을 소복이 쌓아 넣은 설탕커피를 입에 달고 살면서, 삼겹살만 먹는 생물박사다.

외아들 민이는 어려서부터 아토피가 심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긁어대느라 많이 힘들어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메일을 열었다.

치밀하지 않은 남편의 ID와 비번을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와이프'라 칭하는 여자와 주고받은 메일이 쏟아져 나왔다.

남편은 조사활동이라는 핑계를 대고 시련 몰래 '와이프'와 데이트를 즐겼다.

더욱 기막혔던 건 급한 일에 써야 한다며 시련의 생활비까지 끌어 모아 가져다 '와이프'에게 명품백을 안겨주었다.

'처형'이라 불린 '와이프'의 언니도 큰돈 뜯어가는데 한 몫했다.


사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같이 일하던 연구실 제자, 공부하러 온 우크라이나 학생, 이번에는 단골 술집 여주인이다.

월급은 온데간데없이 깨진 항아리 속으로 사라졌고,

남편이 대책 없이 끌어다 쓴 돈들을 갚으라는 고지서, 독촉장, 법원 서류가 끊임없이 날아들었다.

급기야 회사 돈에 손을 댄 것이 발각되어 그는 해직되었다.

위장이혼은 곧 현실이혼이 되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남편은 울산집을 떠났다.


시련은 울산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막내딸이었다.

게다가 입시과외 선생님으로 입소문 난 시절도 있어서 다행히 경제적 타격은 적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테니스를 쳤다.

"테니스라도 안치면 나 죽어!"

시련이 눈물을 삼켰다.

민이는 의대에 진학했다.


이혼 후 시련의 남편 행색은 노숙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으르고 씻기 싫어하는 천성에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으니.

머리는 폭탄, 수염은 덥수룩, 세수 안 한 푸석한 얼굴, 언제 빨아 입었는지 알 수도 없는 꾀죄죄한 옷차림.

하루 한 끼 몰아 먹는다는데, 입이 터져라 욱여넣은 음식을 물고 씨익 웃는다.

고성에 손바닥 만한 방하나 얻어 지내면서 주인 닮아 폐차 직전인 차를 끌고 프리랜서로 살아간다.

티비에 뭔가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한 컷 찍혀 지나가는데, 이가 빠진 추레한 그가 많이 늙었다.


시련의 프사는 계속 이어졌다.

윔블던 테니스경기장, 오페라하우스, 아프리카 최서남단, 아부심벨 신전, 콜로세움, 앙코르와트...

가야금 연주하며, 낙타 타고, 말 타고, 마차 타고, 사해에 누워 둥둥.

프사엔 온통 그녀 혼자다.

테니스 치는 그녀의 두 발이 공중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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