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참았다, 나교양여사
22평 아파트에 살면서 늘 길 건너 32평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게 소원이었던 나교양여사.
40평 아파트에 살면서, 아들, 며느리와 알콩달콩 같이 사는 말년을 꿈꿨던 그녀는
결혼 전까지 초등학교 교사였다.
여자사범학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이 차고 넘쳤던 그녀는 아버지 호통 몇 마디에 무서워서 싫다던 군인과 결혼했다.
초등학교 선생이라 초등학교 수준 밖에 못된다고 그녀를 타박하던, 강직한 성품의 고집불통 남편.
평생 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남편을 챙기고, 남편의 물 심부름 한번 거스른 적이 없던 그녀가 아흔을 넘기면서 달라졌다.
농업고등학교에서 똥통 짊어지고 다녔던 대위에게 대학 학비 대줘 졸업시켜 놨더니 수준 타령이라니 적반하장이라고.
시작은 "지랄하네"였다.
차츰 더 심한 욕도 서슴없이 했다.
급기야 악을 쓰며 남편을 때린 적도 있다.
그녀의 태도가 돌변한 건 아들에 대한 애틋함 때문이었다.
아들이 남편에게 '당했던' 부당한 일들 하나하나를 그녀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아들 환갑이 지났으니 60년 이상을 참고 견뎌왔던 거다.
"아버지는 날 한 번도 믿지 않으셨어."
아들의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했다.
예민한 독불장군 남편에게 아들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대학을 속이고 결혼한 며느리도 미워했다.
평생 남편에게 무릎 꿇고 순종했던 아들, 처갓집 돕느라 신용불량자가 되어 은행 거래가 정지되어 버린 아들, 며느리가 없는 아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불쌍한 아들이었다.
시아버지를 무서워한 며느리, 친정 동생 돕느라 남편을 신용불량자로 만든 며느리, 보험회사에 다니며 생활비를 보탰던 며느리, 대장암에 걸려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 며느리, 불쌍한 며느리였다.
반격의 날이 찾아온 거다.
아들이 잘못된 건 모두 남편 탓이었다.
힘없이 누워있는 남편은 이제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리고,
남아있는 재산은 아들이 가져가야 한다.
아흔한 살인 그녀의 남편은 방문 기둥을 잡고 버텼지만 결국 요양병원으로 갔다.
나교양여사는 서슬이 퍼렇고,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녀의 남편은 기력 없이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