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의사도 부재중!

말벌에 피습당한 세 번째 발가락, 정교수

by 바비정원

40년 가까이 되었다.

회사 입사동기들 중에서 여자 동기는 고작 다섯 명뿐이었다.

강철 체력 속사포 도쌤, 초콜릿 스미마셍 정교수, 정보원 낙하산 이 부장, 대학 절친의 올케인 준재벌집 며느님, 그리고 강원댁 나.


도쌤은 우리와 1년을 함께 근무한 후 교사발령을 받았고, 강철 체력으로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번 얘기를 시작하면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속사포다.

학생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매번 우리를 감동시켰다.

올해가 교직 마지막 해라고 했다.


정교수는 회사에서 2년 근무를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동경대학교에서 박사까지 마친 끈질긴 학구파다.

일본에서는 커피와 초콜릿으로 연명하다시피 했다.

새까만 기미로 뒤덮인 얼굴과 뼈와 피부가 맞닿은 듯 빼빼 마른, 학위를 받고 돌아온 정교수의 모습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 부장은 회사 다닐 때도 유명인사였다.

공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정보원 직원이라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귀여운 얼굴에 생글생글 애교가 넘쳐 남자 사원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나와 함께 근무했던 사무실 선배와 시끌벅적 연애 끝에 결혼하고 퇴사했다.

그녀는 올해 초에 남편과 이혼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혼 후 새로 다니는 회사에서 부장으로 있다는데 역할이 애매하다.


준재벌집 며느님은 내 대학친구의 올케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오빠 신붓감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 오빠는 나의 사무실 직속 선배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나는 전산실에 근무하던 그녀에게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 오빠가 있다고 슬쩍 얘기했는데 싫단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녀는 내게 조용히 다가와 얘기했다.

그 오빠를 중매로 다시 만나게 됐다고.

중매쟁이가 준재벌집 외아들이라고, 시누 남편 셋은 모두 법조계에 있다고 했단다.

얼마 후 그녀는 화려한 준재벌집 며느님이 되었다.

다섯 동기모임에서 며느님은 자주 남편과 시댁 불만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준재벌집이면 그런 것들쯤은 다 참을 수 있지."

놀림인지 비아냥인지, 곧 웃음바다가 된다.

다섯 명의 동기들 중에서 나는 각별히 도쌤, 정교수와 더 친했다.


남편이 1박 2일 동안 설악산에 간다고 했다.

그 얘기는 내가 하룻밤을 혼자서 보내야 한다는 거였다.

산속에서 나 혼자는 밤을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얘기를 꺼냈다.

지난번엔 남편이 옆집 언니에게 하룻밤 우리 집에 와서 나와 함께 짜달라고 부탁했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산골에 한번 오고 싶어 했던 도쌤과 정교수가 떠올랐다.

얼른 도쌤과 정교수만 따로 있는 톡방에 놀러 오라는 톡을 올리니 두 친구 모두 곧바로 오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잘 됐다.

남편 없는 집에서 두 친구와 수다파티를 즐길 계획을 세웠다.


정교수의 차를 함께 타고 온 도쌤, 나는 반가운 친구들과 곧바로 산에 올랐다.

끝없는 수다가 이어졌다.

하산 후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산속 동네 맛집, 숲 속의 빈터로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도쌤은 수육 한 접시를 안주삼아 막걸리 한 병을 뚝딱 마셨다.

술을 못 마시는 정교수와 나는 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 벤치에 앉은 셋은 또다시 수다를 시작했고, 어둠이 내려앉자 비를 피해 안채로 자리를 옮겼다.

도쌤은 가져온 맥주를 모두 마시고 취해 꾸벅꾸벅 졸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셋이 함께 잘 별채에 보일러를 켜느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정교수는 그런 나를 따라나섰다.

그때였다.

정교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정교수는 슬리퍼에 있던 벌을 미처 보지 못하고 무심코 신을 신었고, 오른쪽 세 번째 발가락을 정통으로 물렸다.

커다란 벌은 정교수 발에 밟혀 몸통과 노란 엉덩이가 두 동강이 난 채 죽어 있었다.

정교수의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통증이 심해지면서 오른쪽 다리가 떨리며 경련이 일어났다.

곧바로 죽은 벌의 사진을 찍고, 독이 정교수 몸에 퍼지기 전에 사혈침으로 피를 뽑아내려고 애쓰며, 119에 전화를 걸었다.

말벌이라고 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밤중에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119 구급대가 산속까지 오려면 40분 이상 걸리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정이 넘어서 구급대가 도착했다.

정교수는 곧바로 구급대 침대에 누여졌고 보호자인 나는 정교수와 함께 구급대에 올랐다.

도쌤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지만 많이 취해 있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다시 잠들었다.

"어느 병원으로 가나요?"

다급한 나의 질문에 구급대원은 대답했다.

"병원에 의사들 없는 거 아시죠?

강릉 A병원엔 의사가 없습니다.

인제 K병원은 치료가 안되고요.

속초 B병원으로 갑니다.

40분 이상 걸립니다."

지명도도 없는 작은 병원 같았지만 어디든 가야 했다.


속초 B병원 응급실엔 짜증스럽게 인상을 쓰고 있는 의사가 귀찮은 듯 어느 환자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하라는 치료 안 받을 거면 아무것도 못해줘요. 나가세요."

정교수는 고분고분 x-레이, 피검사, 소변검사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혈관을 찾지 못한 간호사는 정교수의 왼쪽 팔을 마구 쑤셔댔다.

응급실엔 정교수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사 알레르기가 있다는 정교수의 또렷한 말투가 거슬렸는지 뾰로통한 의사는 먹는 약을 안 지어준다고 했다.

나는 의사에게 돌아서서 먹는 약을 좀 지어달라고 사정했다.

오른쪽 발을 딛기 힘드니 깁스를 해야 한다며 정교수의 오른발에 단단한 플라스틱 신발이 신겨졌다.

다행히 별다른 치료 없이 한참의 얼음찜질로 정교수의 진통은 잦아들었고, 나가라는 의사의 허락이 떨어졌다.

원무과에서는 35만 원의 청구서를 들이밀었다.

새벽 3시가 넘었다.


이젠 택시를 타고 속초에서 산속집까지 가야 할 차례다.

비는 아직도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원무과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택시가 곧바로 도착했다.

이상한 택시다.

기사는 도착지 주소를 가르쳐줬는데도 입력하지 않았다.

으슥한 창고로 가서 차를 세우더니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빗소리가 시끄러워서 그곳에서 주소를 입력한단다.

하지만 결국 '도착지 정보 없음'으로 택시는 다시 출발했다.

가는 길이 낯설다.

어디로 가냐고 했더니 미시령 쪽으로 간단다.

차를 세우라고, 구룡령 쪽으로 가서 터널로 우회전해야 한다고 했다.

응큼한 기사는 양양 떡마을까지는 길을 안다고 했다.

거기부터는 내가 길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칠흑 같은 어둠과 비 때문에 창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교수는 티맵을 켜고 그녀의 핸드폰을 슬쩍 내게 건넸다.

몇 차례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걸 바로 잡았다.

나는 머리끝까지 신경이 곤두섰고, 극도로 예민해졌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택시요금은 7만 9천 원이 찍혀 있었다.

정상요금이었다.

현금 만원을 더 얹어주며 산속 오지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아침식사나 하라고 얘기하며 기사를 보냈다.

택시를 돌려보내니 다리가 풀리고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도쌤은 안채에서 아직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두 친구와 함께 별채로 들어간 나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해보았다.


서너 시간 후 정교수와 도쌤을 서둘러 서울로 보낸 후에야 나는 제대로 긴장이 풀렸고, 뭔지 모를 중압감에서 해방되었다.

특별하고 위험했던 하루가 지나갔다.

작가의 이전글비주류, 주류 다시 비주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