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이!" 소리와 동전 15원

멈추지 않는 기억들, 반쪽이

by 바비정원

두세 살 무렵,

부엌에서 그녀의 어머니는 분주하게 저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바삐 오가는 어머니를 멀건히 지켜보던 그녀는 순식간에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솥단지 속 뜨거운 물이 그녀의 왼쪽 팔에 닿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기억에 없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안고 가까운 군 병원으로 내달렸다.

눈물 젖은 '마미 크래커'를 먹으며 아버지 품에 안겨 있었던 어린아이.

학창 시절 내내 그녀는 왼쪽팔에 넓게 자리 잡은 화상 흉터를 가리느라 신경을 고추세우고 지냈다.


오전, 오후반이 있던 과밀 초등학교 학생들은 버스를 타고 통학해야 하는 새로 지은 학교로 나뉘어 나갔다.

이사도 가지 않았는데 그녀는 두 번이나 전학을 갔다.

전학간지 며칠 안된 어느 날, 한쪽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할 동전 15원이 사라졌다.

버스 요금은 후불제여서 안내양 언니에게 직접 내고 내려야 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가까워 올수록 놀라 홍당무가 된 어린 그녀의 얼굴은 터져나갈 듯했고, 가슴은 천둥 쳤고, 가방을 뒤지는 손은 길을 잃고 분주했다.

귀여워 죽겠다는 듯, 소리 없는 웃음을 머금은 안내양 언니는 그녀를 감싸 안듯이 자연스럽게 집 앞 정류장에 내려주었다.

감사의 말도 못 하고, 차마 뒤도 돌아보지도 못한 채, 뜨끈뜨끈한 몸뚱이를 재빨리 옮기며 어린 그녀는 집으로 달렸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의 도시락 반찬은 자주 마늘종 장아찌 무침이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이기도 했다.

담임선생님과 선생님 눈에 든 서너 명 학생들이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도시락을 함께 먹었다.

얼굴이 하얗고 옷도 멋지게 입은, 이름도 예쁜 친구 '주유미'는 언제나 소시지반찬을 싸왔다.

당시 소시지 반찬은 친구들 사이에서 범접 불가, 인기 메뉴였다.

주유미의 소시지반찬으로 바삐 젓가락을 옮기시던 담임선생님은 그녀에게 미안했는지 한마디 하셨다.

"선생님은 장아찌 못 먹어."


상도동에 위치한 강남여자중학교.

언젠가 그녀의 딸이 물었다.

강남에 있지도 않은데 왜 이름이 강남여자중학교냐고.

상도동이 한강 남쪽에 있는 건 분명했다.

중학교 2학년은 학창 시절 중에 그녀가 가장 즐거웠던 때다.

K와 Y.

공부도 셋이서 도찐개찐.

도시락도 함께 먹고, 함께 웃고 떠들고, 담임선생님 흉도 함께 보고.

K는 K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했다.

신혼집은 반지하 단칸 셋방, 화장실도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송광호네 화장실과 비슷했는데 작은 문은 달려 있었다.

허리를 펴면 머리가 닿는 화장실, 뭔가 긴박함이 느껴졌었다.

Y대를 졸업한 Y는 부모님 집으로부터 일찍 탈출하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무산되는 듯싶었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된 지금 그녀는 친구들이 궁금하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M여고까지 아침마다 142번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넘게 다녔다.

안내양 언니는 버스가 터져 나갈 듯 승객을 가득 태워 닫히지도 않는 뒷문을 양팔로 버티며 출발을 외쳤다.

"오라이!"

왼쪽,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제자리로 돌리는 기사님의 묘기가 펼쳐지면 버스는 휘청, 문에 매달려 탔던 학생들은 버스 안으로 자연스레 밀려들어갔다.

그제야 안내양 언니는 수동의 버스문을 닫았다.


어려서 이런 일들이 있었지.

몇 가지 소중한 기억들이 떠올라 그녀는 반가웠다.

어린 반쪽이의 멈추지 않는 기억들, 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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