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이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란 소설 속 주인공이다. 처음엔 제목에 이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버들이랑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휘리릭 읽히는 글을 아끼고 아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마치 실제로 알던 사람과 헤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한동안 먹먹할 정도였으니까. 버들이의 생애를 통해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과 친구가 되는 상상에 푹 빠져 지냈다.
버들이는 18세 나이에 사진 신부가 되어 하와이로 떠났다. 1910년대쯤부터 하와이로 이민 간 조선인 남자들이 결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미국 정부에서 사진결혼을허용해 줬다고 한다. 중매 쟁이를 통해 하와이에 있는 남자와 조선에 있는 여자가 사진을 교환한 후혼인하는 방식이었다고. 전화기도 없던 시절에 사진 한 장으로 연결돼 수백 명의 사람들이 먼 땅으로 건너가 정착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시절이 온통 아픈 역사로 범벅되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저 버들이가 무탈하게 살기만을 기도하는 심정이 되곤 했다. 버들이가먼 이국에서 새로 생긴 가족들 사이에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고, 버들이가 사랑받을 땐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그 시대를 겪어본 내가 아는 사람, 바로 우리 외할머니가 계시다. 어쩌면 버들이를 보면서 우리 외할머니 생각을 자주 했는지도 모르겠다. 버들이는 할머니 보다도 한 세대 더 언니이긴 하지만.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소학교에 들어갔는데, 몇 년간 일본어를 배워도 너무 어렵기만 했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6학년 때쯤 광복을 맞았고, 처음으로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쳐 줬는데, 고작 1달 만에 글이 술술 읽혔다고 말하며 기뻐하시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엔 한의원에서 60대 환자분이 뒤늦게 고등학교 공부를 시작했다며 이런 말을 하셨다.
"선생님, 젊은 나이에 오래 공부하시느라 힘드셨죠? 제가 요즘 학교를 다니는데요. 공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니까요. 딸들 어릴 때 시험 문제 틀렸다고 엉엉 우는 걸 봐도 그게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안 됐는데요. 이제야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실은 버들이도 하와이 가면 공부도 할 수 있단 말에 선뜻 타국행을 결심했었다. 물론 먹고살기 바쁜 건 조선에서나 하와이에서나 마찬가지였지만. 그게 벌써 100년 전쯤 일인데, 아직까지도 내 주변엔 버들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게서 내게로... 어쩌면
버들이가 못다 이룬 소망들이 이렇게 100년 후를 살고 있는 내게까지 전해진게 아닐까. 내 안에도 버들이의 일부가 남아 있어서 그렇게도 버들이 이야기가 좋았나 보다.맑고, 솔직하고, 어질고, 강인한 버들이. 버들이와 함께 해 자랑스럽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이런 사람들의 후손이란 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