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의 존재 이유

삶에서 직면하는 장애물 뛰어넘기

by 사월

요즘 일기장에 오늘 내가 해낸 일들을 사소한 것이라도 다 적어보고 있다. 출근해서 몇 명의 환자를 보고 어떤 처방을 냈는지 처럼 직업이니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은 물론이고, 설거지나 이불 개기, 심지어는 양치나 세수같이 아주 간단한 일들까지 모두 다. 그렇게 다 적고 나면 생각보다 하루 종일 내가 해내는 일이 참 많다는 게 한눈에 보인다. 그리 적기 시작한 건 '두통' 때문이었다.


원래도 두통이 잦은 편이지만 특히 날이 추워지는 겨울이면 두통이 훨씬 더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약한 몸을 탓하곤 했다. '한 것도 없는데 머리는 또 왜 아픈 거야. 이 정도 일도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 한심하다 한심해.'


학생 때는 머리가 아프면 너무 화가 났었다. 오늘 이만큼 공부해야 한다고 계획한 게 있는데 두통이 오면 결국 계획을 다 지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욕심이 더 커서 엉엉 울면서 아픈 머리를 쥐어뜯으며 억지로 공부하곤 했다. 울면 머리가 더 아플 거란 걸 아는데도 내가 원하는 만큼 다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서러워서 이런 나를 향해 욕하며 울었던 것 같다.


이젠 한계에 부딪힌 건지, 1~2년 전쯤부터 두통의 강도가 점점 더 세졌다. 전엔 타이레놀 한 알을 먹으면 머리가 좀 멍하긴 해도 극심한 통증은 줄었더랬다. 지금은 진통제 한 알로는 기별도 안 온다. 결국 다 포기하고 눕는 수밖에 없다. 때론 아픔이란 게 몸을 쉴 수밖에 없게 하는 순기능을 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아파서 눕는 날이 느니까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나'를.


남들은 하루에 환자를 몇 명을 본다던데, 남들은 저녁 몇 시까지 진료를 한다던데, 남들은 추나 치료도 많이 하고, 약 상담도 많이 한다던데. 남들과 비교해 보는 건 내 고질병이다. 계속 아프고 나니까 이제야 '나'를 보게 된다. 자꾸만 내가 아플 자격이 있나, 이 정도 가지고 아파서 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는 자책이 느껴져서 일기장에 적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말 내가 한 일이 그렇게 없었나? 하고, 객관적으로 봐야겠단 생각으로.


그렇게 적다 보니 발견한 게 하나 있다. 나는 내가 해낸 일들 중 대부분을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는 걸. 고심해 처방을 내고, 정성껏 복약 편지를 쓰고 나서도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환자 한 분 한 분 침을 놓고,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친절하려 노력한 후에도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거 가지고 유세 떨기는..." 내가 나를 향해 매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매일 그리 타박하는 사람 앞에서 힘을 낼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플 만도 했다. 지칠 만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일기장에 오늘 내가 해낸 일들을 적어보는 일은 유세 좀 떨어보자 결심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 마음먹으니 더 필사적으로 자세히 적게 됐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나는 그리 대단한 것들로 행복해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그저 지금처럼 이렇게 일도 하고, 밥도 차려먹고, 청소도 하고, 가족들과 만나고, 가끔은 여행도 다니면 그걸로 충분하구나.


그만 아프고 싶어 시작한 일이 비로소 나를 보게 했다. 어쩌면 두통 덕분에 나를 만난다. 그게 두통이 있어야만 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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