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글쓰기와 나

좋은 글을 쓰려면?

by 사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몇 년간 갈피를 못 잡았다. 겉보기엔 그럭저럭 사는 것 같았지만 속은 망가지고 있었나 보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너무 슬프다고, 누구에게도 마음 편히 터놓지 못했었다. '엄'자만 입 밖으로 내도 벌써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게 싫었고, '엄마' 이야기를 하면 무거워지는 공기와 걱정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감당하기도 싫었다. 슬픔에서 원망으로, 원망에서 분노로, 또 삶에 대한 회의로, 내 마음이 그렇게 진화해 가는 동안 많은 것들이 마음속에 고여 들었다. 그렇게 고이다 못해 새어 나오는 지경이 되었을 때, 비로소 '글'이란 걸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여기저기서 툭하면 비집고 올라오는 감정들을 해소하는 창구일 뿐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눈물 콧물 쏙 빼며 쓰고 났더니 어느 날인가부터는 엄마랑 관련 없는 글도 쓰기 시작했다. 엄마를 뺀 내 삶, 내 생각, 내 마음에 대하여. 살면서 남의 말과 평가가 아주 중요했던 내게, '나'의 모든 것에 대해 글을 쓴다는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일이었다. 그건 마치 지구는 사실 둥글고,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옛사람들 만큼 온 세상의 중심이 바뀌는 일이었으니까.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남에게 받는 인정보다 '나의 만족'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배웠다. 진득이 앉아 일상 속 장면들을 곱씹고, 어디 가선 말하기 어려운 깊은 생각이나 감정도 곁들이며 나만의 감성을 담은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글을 따라 내 마음속에서도 알록달록한 그림이 한 장 완성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그림들은 보고 또 봐도 어찌나 뿌듯하고 기분 좋던지! 어쩔 땐 1주일 전, 한 달 전, 1년 전의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경험이 쉬이 휘발되어 버리는 것 같은데, 글이 비로소 내 인생의 한 장면을 완성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또다시 내 기억을 내가 원하는 모양과 색으로 칠해줬고, 나를 더 만족스럽게 해주기까지 했으니, 글은 언젠가부터 글 이상의 무언가가 돼주었다.


글쓰기는 삶의 지속적 흐름에서 절단면을 만들어
그 생의 장면을 글감으로 채택하는 일
-온유 저, <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또 글은 나의 결핍을 더 이상 결핍이라 느끼지 않도록 위로하고 돕기도 했다. 말주변이 없어 그런지 몰라도 남들 앞에선 하고 싶었던 말의 10%도 전하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다 보면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온전히 닿지 못한다는 게 느껴져서 그럴 때면 쓸쓸해진다. 나는 단단한 나무 상자 같은 모양을 전달하려 애쓰고 있는데, 상대방에게 말이 넘어갔을 땐 쉽게 구겨져 버리는 플라스틱 통 정도 되어버리는 것 같달까. 속도에 휩쓸리고, 흐름에도 휩쓸리다 보면 내가 건넨 말은 마치 수수깡으로 만든 엉성한 구조물 정도 돼 버린다. 결국 사람 사이에서도 꼭 전하고 싶었던 진심은 문자나 편지로 갈음할 때가 많다. 게다가 관계에서 느꼈던 생각이나 감정도 글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비로소 소화가 되고 아쉬움 없이 깨끗이 청소되는 것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엄마를 위해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보니 글쓰기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 위로하고, 내 경계를 튼튼히 하고, 내 생각과 감정의 뿌리를 키워주는 자양분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남겨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리울 때마다, 답답할 때마다, 속상할 때마다... 이제는 좋은 날도, 기쁠 때도, 신날 때도 글을 쓰고 있으니까.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게 차곡차곡 내 삶의 이야기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엮어보고 싶다.


삶은 무수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요.
그러나 그 이야기들을 쓰거나 말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답니다.
-한나아렌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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