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쉴 곳은 우리 집

나에게 딱 맞는 집

by 사월

최근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한 아파트의 주택 청약이 뜨거운 이슈였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으로 넓은 호수 공원이 펼쳐져 있고 옆으로는 근린공원을 끼고 있는 입지 조건에 많은 시민들이 열광한 것이다. 요즘 지방에서는 청약 미달이 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데, 이번 청약은 높은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최고 경쟁률이 61:1에 달했다. 엄청난 경쟁률에 나도 동참했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고 말이다.


당첨 발표가 나기 전 주말에 아파트 부지나 구경해 보자며 공원에 놀러 갔다. 온 동네 아이들이 다 여기에 모여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아기들이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놀고 있고, 삼삼오오 호수가를 열심히 돌며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우리 집 앞마당이 이런 모습이라면 좋긴 좋겠다...' 싶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엔 남들도 다 살고 싶어 하는 법이지.


찬란한 풍경을 열심히 눈에 담다가도 몸과 마음이 노곤해질 쯤이면 모든 걸 마다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뿐이라던 노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집에 돌아와 흐물거리는 촉감의 잠옷으로 갈아입고 새 아파트는 까맣게 잊은 채 다시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 침대에 눕는다.


요즘엔 자기 전 1시간 남짓 소설책을 읽고 있다. 때론 거실에서 남편이 tv 보는 소리를 들으며, 어떤 날은 벌써 단잠에 빠진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그러다 지루해질 때쯤 책을 덮고 일기장을 펼쳐 든다. 오늘은 쓸 말이 없을 것 같다가도 막상 펜을 들면 끼적끼적 무어라도 쓰고 있다. 아침이면 등 떠밀리듯 일어나고 밤이면 다음날을 위해 마지못해 잠들었는데, 밤 루틴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하루를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 짓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뿌듯하다.


모든 의식을 다 마치고 누워 잠시 생각했다. 32평, 호수뷰, 공원, 학군, 집값... 생각해 보니 그런 것들 속에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단지 팍팍한 세상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내 취향은 뭔지, 내가 원하는 건 뭔지 고민해보지 않은 채로. 나는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 걸까? 나에게 집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 집은 까무잡잡한 맨 얼굴에 후줄근한 잠옷 차림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흐트러지고 제멋대로인 나를 왜 이제 왔냐며 한껏 반겨주는 곳. 누워서 하염없이 tv를 보고, 설거지거리를 잔뜩 쌓아 놓고, 이름 모를 화분에 물을 주고, 건조기 안에 옷들을 방치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소설책을 읽고, 나만 볼 일기를 쓰고, 남편과 시답잖은 수다로 밤을 지새우는 곳. 그러니까 생산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나여도 괜찮다고만 하는 우리 집. 내가 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되는 곳.


아파트 생각에 조여들었던 가슴이 잠시나마 느슨하게 편안해진다. 이러나저러나 제일 좋은 집은 역시 우리 집이지. 이왕이면 집값이 오를 곳에 등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기를 들고 싶은 건 아니다. 단지 내 마음이 궁금했다. 나에게 집은 어떤 곳인지, 무엇이 본질인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될 테니까. 내일 아침이면 또 다른 욕심에 눈을 돌릴지 모르지만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존재로서의 나를 반겨준 우리 집에 고마운 마음을 전해 보련다. 역시 내 쉴 곳은 우리 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