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기를 기리며
내 마음속엔 걱정이 사랑이라 해석되는 프리즘이 있다. 걱정해 주는 그 말들이 좋아서, 어쩌면 그래서 자꾸만 아픈 건지도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밤, 엄마는 내게 말했다. "너는 걱정이 하나도 안돼." 걱정이 사랑인 내게는 그 말이 참 섭섭했다. 그게 엄마의 마지막 걱정인 줄도 모른 채로.
요즘 가끔 생각한다.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까탈스럽고 예민해 말 한 번 걸기도 조심스러웠던, 그래서 도대체 속을 모르겠다던 나는, 엄마에겐 어떤 딸이었을까. 그렇게라도 엄마의 걱정을 사고 싶었나. 엄마의 걱정을 야금야금 먹고 자란 나는 이제와 소용없는 후회를 한다. 더 많이 담아둘걸. 나를 향한 엄마의 눈빛과 말들을 더 많이 품어둘걸.
부모님을 그저 평범한 분들이라 생각했었는데 다 같은 환경 속에서 크는 건 아니라는 걸, 내가 자란 그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서른이 넘어서야 손톱만큼 알았다. 그만큼 철이 없었다. 나의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특히 나만을 위해 완벽한 온실을 만들고 비와 눈을 온몸으로 막으며 사셨다.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땐 세상이 왜 이래, 사람들은 왜 이래 화가 나고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걸,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걸, 오히려 특이한 쪽은 나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깨우쳐 간다.
여전히 내 머리 위엔 바람과 추위를 막는 온실이 견고하다. 튼튼한 내 온실 아빠, 아빠가 말없이,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히 나를 지키고 계심을 안다. 작은 아픔에도 와르르 무너질까 새로운 온실을 짓느라 부단히 애쓰는 남편도 생겼다. 다 내가 잘나서, 내가 잘해서 얻은 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실은 내 힘만으로 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온실 속에 살고 있는 나는 덜 익은 살구처럼 시고, 떫고, 텁텁한 맛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간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세종 5년, 정조 16년 하고 해를 센 것처럼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우리 가족에게도 새로운 시간이 흘러간다. 곧 9주기다. 9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좀 단단해졌나 싶었는데 여전히 물러 터졌다. 이렇게 무른 마음으로 과연 진짜 어른이 될 수나 있는 걸까. 나도 누군가의 온실이 되어줄 수 있는 걸까.
지금까지 그랬듯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이 덜 익은 내 마음을 서서히 익혀줄 것이다. 좋든 싫든 매일 오는 아침을 맞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게도 단맛이 들 것이다. 그리운 마음이 야속하기만 했는데, 어쩌면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도 축복일 지도 모른다. 그걸 정말 알게 될 날도 분명 오리라 믿는다. 엄마 덕분에 나만이 낼 수 있는 색감이 더 깊어졌다는 것 정도는 벌써 알게 됐으니까. 그렇게 엄마가 모르는 나의 시간이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
<반건조 살구> -안희연 씀.
버리러 다녀왔습니다
꼭지를 떠나려면 결심이 필요하니까요
떨어져봐야 흙바닥인 삶이지만
아픔을 모르는 건 아니니까요
버릴 땐 큰 것 위주로 버립니다
휑한 느낌이 좋아서요
속에 뭐가 많은 봄날이에요
나 하나로도 버겁다는 뜻입니다
이 집에 나와 간장종지만 남은 사연입니다
누가 더 옹졸한가 겨루는 대국이지요
바둑에서는 하수가 흑을 잡는다면서요
양보합니다, 이 집엔 결국 간장종지가 남을 거예요
그리울까요 가지 끝에 매달린
요람을 흔들어주던 바람
밤과 나의 은밀한 결속이었던
달빛 실금들
언젠가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저를 만난다면
흙은 살살 털어주세요
처음은 텁텁하고 떫은 법이잖아요
시간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신맛보단 단맛이 강해질 테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쫀득해질 거예요
위안이 있다면
받을 땐 한 다발이었던 꽃들도
죽을 땐 송이송이라는 것
알맹이 알맹이 느리게 오는 아침을 맞아요
미래요? 놓일 수 있는 식탁은 광활합니다
살구의 색감은 살구만이 낼 수 있습니다
식탁보로 속이지 않은 식탁을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