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딸

특이한 사랑 표현

길들인다는 것

by 사월

어려서부터 배탈이 자주 나곤 했다. 외식이라도 한 날은 아무리 맛있게 먹고 와도 꼭 배탈이 났고 한번 배탈이 나면 2~3일은 굶어야 속이 편했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에 앉아 엉엉 울고 있으면 엄마가 옆에 와서 "먹은 거 아까워서 어째..." 하며 걱정하는 게 외식한 날 루틴일 정도였으니까.


스무 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배탈 빈도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한 자리에 참석하면 위든, 아래든 어느 한 곳에서는 탈이 난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먹기 싫으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괜찮아. 다 남겨도 되니까 먹고 싶은 만큼만 먹어." 내게는 먹지 않아도 될 자유를 주던 엄마의 말. 그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라면서, 조금은 독특한 사랑에 길들여졌는 지도 모르겠다.


보통은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이 먹으라고 권유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어느 자리에 가든 어른들은 항상 많이 먹으라고, 이것도 더 먹어보라고 음식을 내 앞으로 옮겨 주신다. 이미 내 뱃속은 한도초과인데 수저를 놓으면 왜 더 먹지 않냐는 걱정 어린 잔소리가 돌아오니 눈치를 보며 한 입, 두 입 음식을 욱여넣는 것이다. 입이 짧은 내게 더 먹으라는 사랑 표현은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남편이 처음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었을 때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밥그릇도, 국그릇도, 반찬 종지도 다 너무너무 작았다나. 자기한테는 한입거리인 걸 온 가족이 먹으라고 내놓았으니 황당했을 거다. 남편의 먹성을 알게 된 후로는 우리 아빠도 무조건 음식을 푸짐하게 내어 주신다. 남편이 나랑은 전혀 다른 체질이란 걸 아는데도 혹시라도 장인어른께 잘 보이고 싶어 억지로 먹는 건 아닌가 내 방식의 걱정을 한다. 크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을 남편에게도 똑같이 내뱉으면서.


"먹기 싫으면 남겨도 돼. 억지로 다 안 먹어도 괜찮아."


남편이 코웃음 치며 "내가 언제 억지로 먹는 거 봤어? 난 없어서 못 먹는 사람이잖아." 하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남편과는 같이 산지 몇 년 안 됐지만 그 사이 여러 차례의 배탈을 목격한 후로는 엄마랑 똑같은 말을 내게 해준다. 그 말이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의 사랑 표현이라는 걸 남편도 다 이해한 듯하다.


얼마 전 또 한 번의 배탈을 호되게 겪었더니 괜스레 더 먹지 말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남편이 말해주는데도 뭔가 아기 시절부터 나의 모든 데이터를 알고 있는 엄마가 하는 말과는 무게가 사뭇 다른 걸까. 아이를 낳는다면 먹성만큼은 꼭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나와 닮은 아이라면 엄마가 내게 주던 사랑 표현을 그대로 하게 될 것이다. 남겨도 괜찮다고,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또 이 세상과 전혀 다른 특이한 사랑 하나가 길들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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