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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나로 사는 인생이라면

<모순> 양귀자 저

by 사월

야구에 만약은 없다.


아까 볼에 휘두르지 않았다면,

좀 전에 번트를 성공시켰다면,

그 공이 잡히지 않았다면,

실책을 하지 않아서 그 점수를 막았다면.


이미 그 상황은 지나갔고

어떻게든 결론이 났다.

그래서 야구에서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가만 보면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남의 인생을 살아볼 수가 없다.

나는 이번 생에 오로지 나로만 산다.


그래서 내가 타인의 행복과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타인도 나의 행불행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저 내 경험에 빗대어

내 마음대로 추측할 뿐이다.


과연 타인에 공감하는 마음은 몇 프로나 정확할 수 있을까?

나는 타인의 심정을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50%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50%도 매우 오만한 수치일 지도 모르겠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게는 불행이었고,

모두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엄마의 삶이 이모에겐 행복이었다는

삶의 모순.


하지만 나는 이모의 마지막 편지에 큰 공감이 일었다.

어쩌면 50%에 가깝게.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 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모순>, 양귀자 저


남편에게 울며 부르짖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오빠의 불행은 누구에게 말하면 다들 이해라도 해주지?

나는 아무도 이해 못 해. 네가 부족한 게 뭐냐고, 배가 불렀다고.

심지어 나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는 걸.

어쩔 땐 오빠가 겪은 불행이 부럽다 생각할 때도 있었어.

누가 들어도 끔찍해하니까,

누가 들어도 힘들었겠다고 인정해 주니까."


참 잔인한 말이었다.

그 불행은 겪어낼 자신도 없으면서.

그 불행을 겪고도 남편만큼 바르게 성장할 자신도 없으면서.

아주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을 쏟았다.




불행마저, 불행한 내 마음마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모순.

어쩌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모순 덩어리.


결국 내 불행은 내가 알아줘야 한다.

남들이 아무리 인정해 준다고 한들,

남들이 다 힘들었겠다고 이야기해 준들,

그 모든 과정을 건너뛰기 버튼도 없이

하나하나 다 겪어야 하는 건 나뿐이니까.


그러나 다행인 것은

행복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나만 알아주면 된다.


남들 보기에 너무 좋아 보여도

나에겐 맞지 않는 행복이 있고,

남들은 다 시시해해도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내 노력으로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순전히 운으로 얻은 '나'로 사는 이번 삶에서

어찌 살아도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라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종류의 행복은 선택하며 살아보고 싶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는 불행들을 피할 수 없대도.

인생을 살아가며 탐구하겠다던 안진진의 말처럼.


이따금 방문하는 슬픔 맞아들이되
기쁨의 촉수 부러뜨리지 않는 사람
사탕수수처럼 심이 거칠어도
존재 어느 층에 단맛을 간직한 사람

<그런 사람>, 류시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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