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다는 건

무너진 마음 앞에서

by 사월

3월 중순 무렵부터 남편이 남은 휴가들을 소진할 계획이었다. 그럼 나도 잠깐이나마 운동을 다니며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몸도 회복하고, 이제 날도 따뜻해지니 기쁨이를 데리고 가까운 곳에라도 나가보고 싶었다. 4월에는 기쁨이랑 셋이서 멀리 여행도 다녀오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법이다. 진료를 해주시던 원장님이 갑작스레 3월 중순까지만 진료할 수 있게 되었다며 통보를 해왔다. 뜻밖의 연락을 받고 나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제일 먼저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계획했던 육아휴직 일정도 전면 수정했다. 결국 복직 전 남편과 함께 쉴 수 있는 날은 단 6일뿐이다.


통보 방식에도, 근로 계약을 파기하는 이유도, 남편과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때문에도 어찌나 억울하고 속상했는지, 그날은 하루 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기쁨이와 함께 한 이레로 이렇게나 엉망진창으로 아이를 돌본건 처음이었다.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몇 날 며칠은 상한 기분을 꼭 움켜쥔 채 매일을 엉망으로 보냈을 거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잠에서 깼을 때 내 눈앞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싱긋 미소 짓는 기쁨이가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집안일을 겨우 하루 놓았을 뿐인데, 밀린 설거지, 정리해야 할 젖병들, 어수선한 장난감들, 개지 않은 빨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느 때였다면 눈에 보이는 것부터 하나씩 처리했을 텐데 오늘만큼은 그러기 힘든 마음이었다.


모든 일들을 다 뒤로 하고, 기쁨이가 혼자 놀아주는 잠깐의 틈을 타 텅 빈 노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단정히 적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마음가짐>. 잠시 눈을 가볍게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다름 아닌 '감사'였다.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와 발맞춰 가겠다고,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남편이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하루를 어떻게 살아보고 싶은지도 뚜렷해졌다. 오늘 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지. 오늘 하루만큼은 무조건 내가 가진 것들에만 집중해 보면서 살아보자. 나에게는 기쁨이가 있으니까. 내가 바로 기쁨이의 엄마이니까.


그러자 다 놓아버리고만 싶어 무겁기만 하던 마음이 마법이라도 건 것처럼 가벼워졌다. 혼자였다면 몇 날 며칠은 더 끌어안고 있었을 분노와 억울함도, 엄마가 되니 오래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 기쁨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감사'를 떠올리지 못했을 테다. 엄마가 된다는 건, 무너진 마음 빨리 일으켜 세우는 일인가 보다. 그렇게 조금씩 강해지는 거겠지. 물렁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오늘도 내 품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