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을 해야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월요책방지기 1일 차 (221017)

by 사월

오후 2시에 책방 문을 열어야 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주차를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나는 오랜만에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그 시간대의 버스 안은 정말 여유롭다. 학생으로 추정되는 승객 1~2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노인분들 혹은 주부님들로 보였다. 버스 기사님도 운행과 문을 여닫는 속도를 승객들의 속도에 맞춰주시는 듯 느껴졌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한낮의 햇살도 느긋한 분위기에 한몫했다.


책방에 도착해서 한 일.

1. 제일 먼저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앞뒤에 있는 커튼을 젖힌다.

2. 컴퓨터와 포스기를 켜고, 오늘 책방을 아름답게 채워줄 나만의 음악 play list를 선정한다.

3. 책방 안에서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오늘 책방이 열렸음을 알린다.


책방지기의 자리


글로 쓰고 보니 정말 간단한데, 공간도, 구조도 낯설어 그런지 책방을 온전한 상태로 여는 데만 1시간 남짓 걸렸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연결하는 일에도 허둥지둥 댄다던지, 포스기의 이 버튼을 누르는 게 맞는지 하나하나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둥지둥 대던 그 시간이 힘들기보다는 소중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오히려 몇 주 뒤 익숙해져서 척척 해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내심 섭섭할 것 같았다.


이걸로 책방지기의 업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책방지기 일지라고 일기장 같은 노트가 한 권 있는데,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자유롭게 적는 일과 마음에 드는 책의 소개글을 적는 일도 있다. 퇴근 때까지 천천히 해도 될 일이니 일단 책방의 구석구석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어디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화장실이나 부엌은 어떻게 생겼는지 책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공간과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책방은 아담하지만 소품들이나 책들, 사람들이 남기고 간 메모들을 꼼꼼히 보기에는 하루가 부족했다.


온종일 책에 둘러싸여 보냈던 하루도 금세 저물었다. 오늘의 책방 일지를 쓰기 위해 앞선 기록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곳에는 혼자 보기는 아쉬울 정도로 수많은 진심들이 담겨있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책방지기들이 책방에서의 하루를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처럼 여기고 있었고, 서로 마주칠 일 없는, 누군지도 모를 다음 책방지기를 위해 힘이 되고 응원이 되는 따뜻한 말들을 남겨두었다. 아래 책방정류장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면 [일일 책방지기] 카테고리에서 일지들을 읽어볼 수 있다. 공유되는 글이지만 마치 남의 일기장을 엿보고 있는 것 같은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운 마음이 든다.

https://blog.naver.com/bookstorestation


월요 책방지기 첫날 가장 여운이 남았던 한 마디는 책방지기 일지에서 발견했다.

방황을 해야 방향을 찾을 수 있다.


2022년에 접어들면서 무계획 쉼을 결심했다. 쉬면서 마음의 여유도 찾았고, 브런치도 시작했고, 책방지기까지 됐다. 이 중 어느 것 하나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상상하지 못했던 재밌고 행복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선사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정보들을 더 잘 기억하는 뇌로 발달해온 걱정의 동물이라 그런지, 여전히 앞날이 막막하다. 그런데 방황을 해야 방향이 찾아진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다. 책방이라는 공간을 아지트 삼아 방황의 시간 중 일부를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언젠가 오늘을 되돌아보았을 때 꼭 필요한 방황이었다고 기억되길 바라며 책방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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