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기 다른 행복들
병실 침대 밑에는 보호자를 위한 간이침대가 있다. 그곳에서 나는 책을 읽곤 했다. 하루는 <관계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말했다.
"인생에서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해. 사람은 다른 사람 없이는 살아갈 수 없거든. 그 책 정말 좋아 보인다. 잘 읽어보고 꼭 실천하며 살아."
"응. 재미있어."라는 짧은 대답 외엔 덧붙이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무엇에서든 배울 점을 찾아내고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이 엄청나셨다. 온 가족이 함께 <명량> 영화를 보고 나왔던 날, 나는 엄마에게 질리고 말았다.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 주차장을 다 빠져나오기도 전에 엄마는 질문을 던졌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점이 뭐였지?"
사실 이건 질문이 아니다.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는 답하고 싶지 않기 마련이다. 엄마는 효율을 중시하는 분이셨고, 시시껄렁한 감상 따위는 제치고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 하셨다. 대답을 재촉했지만 남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엄마의 이런 소통 방식을 순전히 엄마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독하게 말수가 적었던 아빠와 우리 남매 지분도 컸을 것이다. 엄마와는 대화를 종종 하곤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한 번은 엄마가 나에게 음흉하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아서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유였다. 엄마와의 대화에는 대체로 답이 정해져 있어서 내 생각과 그 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곤란했다. 핀잔을 듣거나 말대꾸한 것으로 끝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아빠와는 대화랄 것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해도 무반응에 가까워 아빠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안해질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성장환경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빚어냈다. 예를 들면 나는 항상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내 의견을 궁금해 할리는 없다고 생각했고,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저런 질문을 하는지 의도를 파악하는데 온 신경이 집중됐다. 혹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반응이 미적지근하면 금세 의기소침해지고, 무시당했다는 피해의식에 휩싸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두려웠으며,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되고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곤란함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내가 요즘 '나를 표현하고 드러낼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 실로 엄청난 변화이자 혁명이다. 이렇게 변한 데에는 우리 집 투머치 토커 남편의 공로가 크다. 남편은 정말 아무렇게나 말을 한다. 틀린 단어를 쓸 때도 많고, 이야기가 여기로 빠졌다, 저기로 샜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곤 한다. 그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끼어들면 또 금세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한다. 무엇이 정답인지, 부정확한 단어를 썼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의 말을 듣고, 느끼고, 편견 없이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릴 때 놓쳤던 말하기의 즐거움을 다시 배우고 있다.
남편은 자신의 수다스러움이 항상 단점이었다고 한다. 남자가 점잖지 못하다고 혼나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미 말이 많게 태어난 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시아버님이 가장 자주 혼내셨다는데, 사실 시아버님도 말이 많다). 나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말이 많아서 좋았다. 말이 많으면서 남의 말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 남편이 딱 그랬다. 남편의 수다쟁이 기질은 우리 집에 와서 더욱더 빛을 발한다. 매일같이 정적만 흐르던 공간에 도란도란 말소리가 피어나고, 굳게 닫힌 줄만 알았던 아빠와 동생의 입도 열렸다. 물론 남편만큼 수다스럽진 않지만 다행히 그래서 균형이 맞는다. 아마 엄마도 계셨다면 얼마나 더 복작복작하고 즐거웠을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나의 글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던 남편의 귀여운 요구사항이 떠올라 남편의 이야기를 슬쩍 집어넣어 봤다. 그래서 오늘 하려던 말은, 표현하는 기쁨과 행복을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를 드러내고 표현한다는 것은 의미가 광범위하다.
직장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도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드러내는 것이라 느껴져 즐겁다. (전엔 일상에서의 모습과 일할 때의 모습이 조금 다른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카카오톡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 때에도 사람들과 나의 일상을 공유하고 때론 댓글이나 좋아요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것만 같아 행복하다.(전에는 부끄러워서 못했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행복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때이지 싶다. 나의 가장 은밀한 생각과 감정들을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엄마에게 나만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나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겁지만 엄마와는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라고. 엄마에게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고, 그 생각들이 올바른지 그른지 평가받지 않으면서 수다를 떨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유년시절이 궁금해진다. 엄마와 아빠도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요즘엔 각자의 행복을 찾아 살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조금씩이나마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