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유럽 이야기 좀 해줘. tv에서 보는 것처럼 멋있고 낭만적이야?
엄마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유럽 땅을 밟아본 딸에게 그곳의 풍경에 대해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런던의 수많은 박물관들과 프랑스의 톡톡 튀는 다채로움, 루체른에서 본 자연의 경이로움과 뮌헨에서 맛 본 시원한 맥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 내가 언제 그런 곳에 가볼 날이 올까?
나: 엄마! 왜 그런 말을 해. 당연하지. 건강해지면 꼭 같이 가보자. 내가 한 번 가봤으니까 엄마한테 다 소개해 줄게!
엄마의 말이 꼭 다시는 그렇게 먼 나라에 가볼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짓는 것 같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엄마의 생각이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엄마는 언제나 강한 분이셨다.
말기암 진단 후 위 절제술을 하고 8번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을 때에도 엄마가 약해졌다 느낀 적이 없었다. 체중이 줄고 몸은 야위었지만 생에 대한 강한 의지와 완치 이후의 삶을 그리는 긍정적인 태도 때문에 겉모습보다 항상 더 크게 느껴졌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남은 가족들을 걱정하기 바빴던 엄마는 죽는 게 무섭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전혀 무서울 게 없고, 다 괜찮다."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아마도 “유럽에 가볼 수나 있을까?”하는 물음에서 엄마의 약한 모습을 감지했고, 약해진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그 후로 ‘내가 ~할 수나 있을까?’와 같은 부정적인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세계는 결국 유럽까지 뻗치지 못했다.
문득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바람이 되고 싶다던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바람으로 태어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바람이 되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엄마를 상상해 본다. 그렇게 온 세계를 탐험하고 내게 돌아온다면 그때는 엄마에게 내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 잠시 머물며 그늘에 기대 쉬어갈 수 있게 튼튼한 나무 같은 안식처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