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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Nov 09. 2022

온 세상을 누비는 바람이 되어

엄마: 유럽 이야기 좀 해줘. tv에서 보는 것처럼 멋있고 낭만적이야?


엄마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유럽 땅을 밟아본 딸에게 그곳의 풍경에 대해 물었다. 나는 엄마에게 런던의 수많은 박물관들과 프랑스의 톡톡 튀는 다채로움, 루체른에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뮌헨에서   시원한 맥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 내가 언제 그런 곳에 가볼 날이 올까?


나: 엄마! 왜 그런 말을 해. 당연하지. 건강해지면 꼭 같이 가보자. 내가 한 번 가봤으니까 엄마한테 다 소개해 줄게!


엄마의 말이 꼭 다시는 그렇게 먼 나라에 가볼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짓는 것 같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엄마의 생각이 어딘가로 향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엄마는 언제나 강한 분이셨다.

말기암 진단   절제술을 하고 8번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을 때에도 엄마가 약해졌다 느낀 적이 없었다. 체중이 줄고 몸은 야위었지만 생에 대한 강한 의지와 완치 이후의 삶을 그리는 긍정적인 태도 때문에 겉모습보다 항상  크게 느껴졌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남은 가족들을 걱정하기 바빴던 엄마는 죽는 게 무섭지 않냐는 나의 물음에 "전혀 무서울 게 없고, 다 괜찮다."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아마도 “유럽에 가볼 수나 있을까?”하는 물음에서 엄마의 약한 모습을 감지했고, 약해진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을 견딜  없었던  같다.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후로 ‘내가 ~ 수나 있을까?’ 같은 부정적인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말은  번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세계는 결국 유럽까지 뻗치지 못했다.

문득 다시 태어날  있다면 바람이 되고 싶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바람으로 태어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바람이 되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엄마를 상상해 본다. 그렇게 온 세계를 탐험하고 내게 돌아온다면 그때는 엄마에게 내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 잠시 머물며 그늘에 기대 쉬어갈 수 있게 튼튼한 나무 같은 안식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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