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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Dec 19. 2022

평범함과 특별함의 한 끗 차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연애 초반 전 남친이자 현 남편이 듣고 싶은 호칭이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별 고민도 없이 내 이름으로 불러달라 부탁했다. 자기야, 별명이나 애칭, 결혼해선 여보, 혹은 oo엄마 등 다양한 말들이 존재하지만 남편에게만큼은 역할 이름이 아닌 본명 그대로 불리고 싶었다. 나이가 들 수록 내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상황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옷가게나 서점 등 우연히 들렀던 가게들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남편분께서 참 자상하시네요. 항상 이름을 불러주시고, 정말 듣기 좋아요." 매일 한결같이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그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느끼진 못했다. 그러다 한 번 씩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이 듣기 좋다는 말에, '내가 매일 내 이름으로 불리고 있구나, 그게 보통의 일은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주 어릴 적엔 내 이름을 싫어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김 씨에 흔한 이름이 만나 평범의 극치였다. 독특해서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하기 쉬운 이름들이 부러웠다. 발음이 비슷한 이름도 많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성과 이름이 모두 똑같은 친구가 한 반에 배정됐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출석을 부르시다가 '김지연'이 두 명인 것을 발견하셨다. "지연이가 두 명이구나. 서로 구분을 해야 하니 키가 더 큰 친구는 큰 지연, 작은 친구는 작은 지연으로 부를게." 그렇게 나는 11살 한 해 동안 '작은 지연'으로 살았다.


4학년 때의 일기장. 그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은 졸업할 때 까지도 계속 날 작은 지연이라 불렀다.


하필이면 그 친구와 중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한 번은 아침 자습을 하고 있는데 "김지연 학생은 상을 받으러 교무실로 오세요." 하는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몇 반인지 호명을 해주지 않아서 교무실에 찾아갔는데 내가 아니라 그 친구가 받을 상이었다. 교무실에서 나와 조용했던 교실의 뒷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무슨 상이었냐는 담임 선생님의 물음에 멋쩍게 웃으며 "제가 아니었어요."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이름이 정말 싫었다.


엄마한테 이름  바꿔달라고 자주 졸랐었는데, 그럴 때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본인이 아는 지연이 들은 하나같이 다들 똑똑하고, 야무졌다며 얼마나 좋은 이름인데 바꾸냐고 하셨다. 그래도 설득이 되지 않자,  이름은 흔해 보일지 몰라도 지연이라는 이름에 흔히 쓰지 않는 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이름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 넓을 (). 뜻이  아이. 서예와 한문 공부를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작고 마른 몸으로 태어났지만 어른들은  안에  뜻을 심어주셨다.  이름의 한자가 특이하다고 해서 겉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나에게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이상  이름을 미워하지 않을  있었다.


대학생 때 친한 친구가 나를 항상 '져니'라고 부르곤 했다. 발음이 꼭 'journey'와 비슷하게 들려서 '내 이름 속에는 [여행]도 담겨 있었구나!'하고 이름을 사랑할 이유를 한 가지 더 만들었다. 어렸을 땐 외모도, 성격도, 심지어 이름까지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참 많았다. 그런데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이름뿐만 아니라 내가 갖고 태어난 것들을 온전히 좋아할 수 있는 힘이 점점 커진다. 그렇게 남들이 가진 것에서 내가 가진 것들로 시선을 돌릴 줄 알게 되는 것이, 그래서 내가 나를 제일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게 어른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남편의 목소리를 통해 내 이름을 자주 듣고 싶다. 그럴 때마다 이름을 지으며 고심했을 부모님의 마음과 나에게 큰 뜻을 담아주신 할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큰 뜻'을 품고 이 세상을 '여행'하며 志衍 [지연]이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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