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연애 초반 전 남친이자 현 남편이 듣고 싶은 호칭이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별 고민도 없이 내 이름으로 불러달라 부탁했다. 자기야, 별명이나 애칭, 결혼해선 여보, 혹은 oo엄마 등 다양한 말들이 존재하지만 남편에게만큼은 역할 이름이 아닌 본명 그대로 불리고 싶었다. 나이가 들 수록 내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상황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옷가게나 서점 등 우연히 들렀던 가게들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남편분께서 참 자상하시네요. 항상 이름을 불러주시고, 정말 듣기 좋아요." 매일 한결같이 이름을 불러주다 보니 그것이 특별한 일이라고 느끼진 못했다. 그러다 한 번 씩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이 듣기 좋다는 말에, '내가 매일 내 이름으로 불리고 있구나, 그게 보통의 일은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다.
아주 어릴 적엔 내 이름을 싫어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인 김 씨에 흔한 이름이 만나 평범의 극치였다. 독특해서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하기 쉬운 이름들이 부러웠다. 발음이 비슷한 이름도 많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성과 이름이 모두 똑같은 친구가 한 반에 배정됐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출석을 부르시다가 '김지연'이 두 명인 것을 발견하셨다. "지연이가 두 명이구나. 서로 구분을 해야 하니 키가 더 큰 친구는 큰 지연, 작은 친구는 작은 지연으로 부를게." 그렇게 나는 11살 한 해 동안 '작은 지연'으로 살았다.
하필이면 그 친구와 중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한 번은 아침 자습을 하고 있는데 "김지연 학생은 상을 받으러 교무실로 오세요." 하는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몇 반인지 호명을 해주지 않아서 교무실에 찾아갔는데 내가 아니라 그 친구가 받을 상이었다. 교무실에서 나와 조용했던 교실의 뒷문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무슨 상이었냐는 담임 선생님의 물음에 멋쩍게 웃으며 "제가 아니었어요." 했던 기억이 난다. 내 이름이 정말 싫었다.
엄마한테 이름 좀 바꿔달라고 자주 졸랐었는데, 그럴 때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본인이 아는 지연이 들은 하나같이 다들 똑똑하고, 야무졌다며 얼마나 좋은 이름인데 바꾸냐고 하셨다. 그래도 설득이 되지 않자, 네 이름은 흔해 보일지 몰라도 지연이라는 이름에 흔히 쓰지 않는 한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이름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뜻 지(志)에 넓을 연(衍). 뜻이 큰 아이. 서예와 한문 공부를 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작고 마른 몸으로 태어났지만 어른들은 내 안에 큰 뜻을 심어주셨다. 내 이름의 한자가 특이하다고 해서 겉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나에게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싹 터 더 이상 내 이름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대학생 때 친한 친구가 나를 항상 '져니'라고 부르곤 했다. 발음이 꼭 'journey'와 비슷하게 들려서 '내 이름 속에는 [여행]도 담겨 있었구나!'하고 이름을 사랑할 이유를 한 가지 더 만들었다. 어렸을 땐 외모도, 성격도, 심지어 이름까지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참 많았다. 그런데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이름뿐만 아니라 내가 갖고 태어난 것들을 온전히 좋아할 수 있는 힘이 점점 커진다. 그렇게 남들이 가진 것에서 내가 가진 것들로 시선을 돌릴 줄 알게 되는 것이, 그래서 내가 나를 제일 좋아할 수 있게 되는 게 어른이 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남편의 목소리를 통해 내 이름을 자주 듣고 싶다. 그럴 때마다 이름을 지으며 고심했을 부모님의 마음과 나에게 큰 뜻을 담아주신 할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하고 싶다. '큰 뜻'을 품고 이 세상을 '여행'하며 志衍 [지연]이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