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되고 처음엔 이 말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나를 어수룩하게 보고 의심하는 것만 같아서.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서 나름대로 배짱이 생겨 그런 말에도 의연하게 대답했다.
"젊어서 더 좋으시죠? 제가 젊은 열정으로 정성껏 진료해 드릴게요."
물론 이 말에 싫다고 답하시는 분은 아직까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뻔뻔한 대화가 가능해지면서부터 알게 됐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꼭 나쁜 뜻만은 아니었단 걸. 가끔은 정말 의심을 품은 말일 때도 있었지만, 어떤 분은 젊은 나이에 대단하단 의미로, 어떤 분은 젊은 기운이 좋다는 의미로, 어떤 분은 별 뜻 없는 인사말인 경우도 많았으니까.
진료를 볼 때 가장 어려운 환자는 표현이 없는 분들이다. 이것저것 여쭤봐도 대답해 주길 싫어하시거나 구체적으로 여쭤보면 짜증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그다음으로 어려운 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분들인데,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하는 분들이다.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은 들을 수 없고,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신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어려운 이유는 비슷하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건지 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날은 <나이가 젊으시네요>와 <하고픈 말을 계속하는> 두 가지 특성이 섞인 환자분을 만난 날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진 '그럴 수 있지. 한두 번도 아니고 왜 이래 아마추어 같이~'를 되뇌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환자분의 이야기도 듣고, 어렵사리 필요한 정보도 알아내며 긴 문진이 끝났다. 마음에 담아둔 게 너무 많으셨던 건지 원장실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말을 건네셨지만.
"그런데 나이가 젊으면 나한테 침을 잘못 놓을 수도 있고, 아무 효과도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 말 한마디에 다잡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래, 아파서 오신 분이잖아. 치료해 드릴 것만 얼른 하고 보내드리자.' 그리 마음먹었지만 치료실에서도 환자분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무릎이 부을 정도로 염증이 심할 때는 운동은 최대한 삼가시고 일상생활 정도 하시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드렸지만, a는요? b는요? c는 괜찮지 않아요? 하는 질문 공세가 이어지자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는 말이 시원치 않았는지 그다음엔 먹을 걸로 화제가 옮겨졌다. 눈가가 떨려서 영양제와 즙을 먹기 시작했는데,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나를 그리 못 미더워하셨으면서 대체 질문은 왜 하시는 걸까? 어차피 나이도 젊고 아는 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하면서 삐뚠 말이 새어 나왔다.
"제가 처방한 약도 아니고, 식품 전문가도 아니어서 모르겠네요."
이렇게 말하면 더 이상의 대화를 차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그럴수록 환자분의 호소는 더 강해질 뿐이었으니까. 더는 대치하기 싫어 내 고집을 꺾고 이러저러한 정황상 몸에 화(火)가 잘 쌓이는 체질이셔서 찬 성질의 음식이 좋겠다고 티칭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환자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게 아닌가.
"사실 몇 개월 전 오래 키우던 강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그 후로 마음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거든요. 저 당분간은 우리 강아지 묻힌 곳에 계속 다녀도 괜찮죠 선생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마도 '화(火)'라는 단어에 마음이 동해 솔직한 심정을 터놓으신 것 같다. 강아지가 묻힌 곳에 계속 다녀도 되겠냐는 질문을 들었을 땐, 그날 사소한 것까지도 한없이 질문하시던 모습이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강아지를 잃었다는 슬픔이 집채만 한 파도가 되어 환자분을 집어삼키는 바람에 많이 괴롭고 불안하셨구나,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에 그토록 확신이 없으셨구나, 나랑 싸우려던 게 아니라 지지받고 응원받고 싶으셨던 거구나 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던 환자분을 진정시켜 드리고, 잠시 함께 호흡하며 숨 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도와드렸다. "선생님, 이제 한결 시원하고 편안해요. 정말 감사해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환자분과 마주할 때면 꼭 이렇게 마음속에 숨어있던 어린 내가 튀어나온다. 때론 나도 함께 삐지고, 같이 화내고, 씩씩거리기도 하면서. 진료 내내 신경전을 벌였던 환자분께 감사하단 말을 듣고 나니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고, 환자분을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게 죄송스럽기도 했다. 언제쯤이면 날카로운 말 뒤에 감춰진 여린 속내를 오해하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내 어리고 서툰 모습과 함께 싸워주신 환자분 덕분에, 그렇게 나도 환자와 함께 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