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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n 22. 2024

미용실에서 배운 일의 보람

한의원 이웃들

매주 목요일 오후는 진료를 쉬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평일에 밖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일하는 날보다 더 바쁠 때도 많다. 이번주 목요일에는 미용실로 향했다.


원래 다니던 미용실 예약이 꽉 찬 바람에 한의원 근처에 새로운 미용실에 들렀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들어갔는데, 뽀글뽀글 사자머리의 강단 있어 보이는 사장님을 본 후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다행히도(?)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직원분이 자리로 안내해 주셔서 조금 안도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두 분은 모녀지간이었다. 맞은편 노후된 건물에서 30년간 미용실을 운영하셨고, 따님도 엄마와 함께 일한 지 15년 째라고. 사연을 알게 된 덕이었을까? 처음 미용실에 들어섰을 때의 묘한 긴장감이 편안함으로 바뀌어 갔다.


마음 편히 머리를 맡긴 채 일하는 사장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미용 일에 진심이신 게 보였다. 머리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말며 거의 무아지경에 이른듯해 보였으니까. 막바지에 이르자 사장님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거셨다.


"머리가 젖어있는데도 볼륨이 살아있는 게 느껴지나요? 머릿결도 정말 부드럽죠?"


머리도 만족스러웠지만 나보다 더 설레는 듯한 모습의 사장님이 참 좋았다.


"사장님, 제 머리를 해주시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하시는 게 느껴져요."


대답해 주시는 목소리가 한껏 들떴다.


"더 아름답게 만들어드리는 일이잖아요. 예뻐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즐거운데요!"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 받는 서비스는 지불하는 돈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 사장님의 즐거움은 손끝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고, 머리를 하는 3시간이 넘는 시간도 짧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한동안 사장님의 말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한의원에 오시는 환자분들께서 종종 그런 말을 해주신다. 참 좋은 일 하신다고. 이렇게 아픈 데를 치료해 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난 손사래를 쳤다. "제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인데요 뭐." 그때 문득 미용실 사장님의 말이 나만의 버전으로 변해 다시 들려오는 게 아닌가.


아픈 몸을 보살펴드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야! 내 할 일을 할 뿐인데도 고맙단 말을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찬 일이야!


이제야 즐기며 일하는 분들의 비결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원래부터 즐거운 일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즐겁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거란 걸. 뜻밖에 찾아간 미용실에서 별 걸 다 배운다. 단골이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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